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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술

金元述

1893. 8. 29 ~ 1948.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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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원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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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星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성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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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제2차 유림단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3년 8월 29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대가면(大家面) 칠봉동(七峰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창렬(金昌烈)이다. 전국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는 가운데 성주군의 만세시위는 초전면(草田面)의 송인집(宋寅輯)을 위시한 송씨 일족과 월항면(月恒面) 대산리(大山里)에 거주하고 있던 이기정(李基定) 등 유림세력과 대가면(大家面) 옥화동(玉化洞)교회 유진성 목사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도들이 연합하여 준비되었다. 이들은 본래 독자적으로 거사를 기획하였지만 상호 협의 하에 공동으로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합의한 후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냈다. 평소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 만세시위 소식을 접하고 함께 뜻을 모을 동지를 물색하였다. 이에 평소 친분이 있던 배상윤(裵相潤)·서병준(徐丙俊)·노기학(魯基學)·김구진(金龜鎭)·백성흠(白聖欽)·박경하(朴京夏) 등과 연락하여 4월 2일 만세시위에 참여하기로 의기투합하였다. 이후 거사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한 역할 분담을 하여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준비하고 거사 소식을 마을 주민들에게 알릴 책임자를 선정해 거사준비를 마쳤다. 약속한 거사일인 4월 2일이 되자 성주군 성주면(星州面) 성주장터에 운집한 3,000여 명의 시위 군중 선두에서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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