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원
金溶沅1875. 4. 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북청군 노덕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75년 4월 1일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성대면(星岱面) 조양리(朝陽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용완(金溶玩). 1916년 천도교에 입교하였고, 1919년 3월 북청군 노덕면(老德面)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북청군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8일 노덕면 내리(內里)에서 천도교인과 학생 등 250여 명이 참여하여 시작되었다. 이어서 천도교 북청교구장인 김태종(金泰鍾)은 이승국(李承國)·이덕수(李德洙) 등 북청교구의 중심 인물들과 함께 노덕면의 장날인 3월 11일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와 깃발을 만드는 한편, 인근 지역의 천도교인들에게 11일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1919년 3월 8일 이원군(利原郡) 서면(西面) 한당리(閑堂里) 정기옥(鄭基玉)의 집에서 천도교인 최병운(崔炳運)으로부터 3월 1일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대해 들었다. 또한 북청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하라는 권유와 함께 독립선언서 100여 매를 받아 돌아왔다. 3월 9일 자신의 집으로 조양리의 한병택(韓秉澤)을 초대하여 독립선언서 50여 매를 교부하고, 3월 11일 천도교 북청교구 교구당에서 있을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10일에는 성대면 보성리(寶星里)의 천도교인 김재식(金在植)과 김서룡(金瑞龍)을 초대하여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며 독립선언서 30여 매와 20여 매를 각각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만세시위 준비를 눈치 챈 일제 경찰이 3월 10일 밤 북청교구를 급습하여 김태종·이승국·이덕수 등을 붙잡아갔다. 주도자들이 끌려갔음에도 만세시위 준비는 계속되었다. 3월 11일 노덕면 내리에 있는 천도교 북청교구 교구당에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600여 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김태종 등 지도부가 전날 경찰에 체포된 사실을 알고 당황하였다. 거기다 일제 경찰은 읍성의 남문·북문·서문을 닫아 외부와의 연결을 차단하였다. 그러나 성문 밖에 모인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치자, 읍성 안에서도 만세로 호응하였다. 이처럼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1919년 4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6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7월 26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