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龍洙
洙187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수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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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6)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수안면(遂安面) 창후리(倉後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7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수안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수안의 만세시위는 1919년 2월 28일 곡산의 천도교인 이경섭(李景燮)이 천도교회월보사의 이종일(李鍾一)로부터 황해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라는 연락을 받고, 서흥군(瑞興郡)을 거쳐 수안군에 도착한 3월 1일부터 전개되었다. 이경섭은 3월 1일 저녁 천도교 수안교구 공선원(共宣員) 이종숙(李宗淑)의 집에서 수안교구장 안봉하(安鳳河)를 비롯한 수안지역 천도교 지도자들과 회합하였다. 이날 회합에서 이경섭은 수안에서도 독립선언서를 군내에 널리 배포하고 서울처럼 만세시위를 전개하라는 이종일의 지시와 함께 독립선언서 100여 매를 전달하였다. 수안의 천도교 지도부는 이에 적극 호응하기로 결의하였다. 천도교 예배일인 3월 2일 수안교구 교구실에서 회합한 교인들은 3월 3일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과 독립을 선언했으므로 헌병 분대를 인도(引渡) 받을 것, 그 실행 방법은 홍석정과 한청일이 담당할 것 등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계획은 거사 전에 수안헌병 분대에 탐지되었고, 그 날 오후 수안지역 천도교 지도부 11명이 체포되었다. 그 과정에서 검거를 모면한 홍석정, 한청일, 이영철 등은 그 날 밤 수안지역의 천도교 중심인물들에게 예정과 같이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임을 알렸다. 1919년 3월 3일 오전 6시경 수안면, 대천면(大千面), 연암면(延岩面) 등에서 130~140명이 수안교구에 집결하였다. 홍석정·한청일·이영철·최양봉(崔陽鳳)·차제남(車濟南) 등의 주도로 태극기와 깃발을 든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부르며 수안금융조합 사무소를 지나 수안헌병 분대까지 진출하였다. 시위대는 우리는 독립하였으며 자유와 공화정치는 대세임을 주창하는 한편, 수안 헌병분대를 인도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수안 헌병분대장은 서울 본부의 명령을 받아야 하니 일단 물러갈 것을 요청하였고, 시위대는 강국보(康國甫) 외 1인을 대표자로 남기고 교구로 돌아왔다. 이어 각지에서 일어난 시위행렬이 수안 읍내로 들어왔다. 이때 대천면 시리원(柴里院) 교구소에서 이동욱(李東郁)·이재관(李在觀)·김문상(金文祥)·용계홍(龍桂弘)·임창운(林昌云) 등과 함께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립만세를 부르며 수안교구로 향했다. 오전 11시경 교구에 모인 시위대가 100여 명에 이르자,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다시 헌병 분대로 행진하였다. 헌병 분대의 인도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일제 헌병은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사상자 발생 소식을 들은 150여 명의 천도교인들은 오후 1시경 헌병 분대 앞에서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헌병대의 발포가 있었다. 수안 읍내 만세시위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1심을 거쳐 1920년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 3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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