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중
金永仲1890. 4. 15 ~ 1945. 1.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통영군 만세시위
- · 1927년 경상도 평의원 김기정 규탄 궐기대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출신으로 1890년 4월 15일 태어났다. 이명은 김영진(金永鎭)을 썼다. 1919년 4월 경상남도 통영군 통영면(統營面) 대화정(大和町)에서 거주하며 어업에 종사하였고, 부도정(敷島町)시장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초부터 이어졌던 통영지역의 만세운동을 확대하고자 고채주(高采周)·강윤조(姜潤祚) 등과 함께 4월 2일 통영의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계획을 세웠다. 거사 당일 오후 3시 30분경 부도정 시장 복판에서 시위대를 이끌고 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앞장섰고, 3천여 명의 군민들이 동참하며 대규모의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 때 장날을 맞아 경계 근무를 서고 있던 일본 경찰이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군중들과 함께 시위를 계속하였다. 일본 경찰과 소방대는 시위 진압을 위해 소방 펌프를 동원하여 시위 군중에게 물을 뿌리며 강제 진압에 나섰고, 선두에서 시위대를 이끌다가 가슴에 물줄기를 맞았다. 이날의 시위에 동조하여 시장 상인들은 철시하였고, 통영 예기조합(藝妓組合)의 기생 33명은 소복 차림으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 시위의 중심 인물로 붙잡혀 1919년 6월 20일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에서 소위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7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7년 한인의 교육 불필요론과 ‘조선어’ 사용 금지론을 주장한 통영 출신 경상도 평의원 김기정(金淇正)을 규탄하다 구속된 동지들의 석방을 위해 시민궐기대회를 개최하였다. 2,000여 명의 군민들과 함께 김기정의 집과 경찰서를 습격하다 붙잡혔다. 이 일로 1928년 12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미결구류일수 중 90일 본형에 산입)을 받고 다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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