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917. 2. 4 ~ 2008. 11. 8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선천(宣川)광복군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선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한국광복군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서주대회전
  • · 대별산작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7년 2월 4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선천읍(宣川邑) 인곡리(仁谷里)에서 태어났다. 아명은 김시준(金是濬)이었다. 아버지 김형균(金亨均)이 1919년 선천지역 3·1 독립운동을 주도했다가 중국의 리우저우(柳州)로 망명하여 병원을 운영하면서 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돕고 있었으므로, 11세 때 가족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 중국 리우저우로 이주하였다. 중국 리우저우에서 중국인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후, 1935년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 제8기로 입학하였다. 황푸군관학교는 1924년 5월 중국국민혁명 군사간부 양성을 위해서 장제스(蔣介石)가 설립하여 교장을 맡고 있던 사관학교였다. 1937년 7월 7일 일제가 중일전쟁을 도발했으므로, 황포군관학교 재학생 상급반은 단축 졸업하였다. 졸업 후 중국 국민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1937년 룽저우(龍洲) 하사관 교육대 구대장을 역임하고, 중국 국민군 제38사단 소속 소대장으로서 서주대회전(徐州大會戰)에 참전하였다. 1938년 중국 중앙군 제11집단군 소속 소대장으로 대별산작전(大別山作戰)에 참전하여 한커우(漢口)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1943년 중국 중앙군 제11집단군 직할 경비중대장으로 승진되어, 야전사령부에서 1개 독립중대를 인솔하고 푸양(阜陽) 전방인 용갱(龍坑)에 주둔하면서 전선 경비 방어 임무를 맡아 수행하였다. 1944년 2월 푸양 중국 중앙군 야전사령부에서 한국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金學奎)를 만나자, 자신이 한국인임을 밝히고 광복군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의사를 피력하였다. 그 후 중국 중앙군 소속 독립경비중대장으로서 적 후방 최전선에서 경비 방어작전을 수행하면서 한국광복군에서 파견 나온 김국주(金國柱)와 협조하여 광복군 제3지대(당시 징모 제6분처) 공작요원들의 작전을 지원하였으며, 특히 일본군 탈출 한국인과 한인 청년들의 초모 공작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소속은 중국 중앙군이었지만 활동은 한국광복군 장교와 유사한 활동을 한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자 중국군을 정식 사임하고 귀국하여 서울을 거쳐 선천으로 귀향하였다. 북한에서 공산화가 진행되자 단신 월남하여 1947년 7월 육군사관학교에 제5기로 입학하였다. 6개월간의 단기 훈련을 마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광주와 제주도에 파견되었다. 1948년 경교장을 찾아서 김구(金九)와 김학규를 만났다. 김학규 장군의 소개로 부인 김영기(金瑛基)를 만나 그해 결혼하였다. 1950년 6·25 전쟁 때 참전하여 1952년 9월 ‘을지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1962년 9월 육군대령으로 예편하였다. 1975년 파라과이로 이민갔다가 1992년 다시 귀국 후에는 광복군 제3지대 출신 친목모임인 ‘부양친목회’(阜陽親睦會)와 육군사관학교 제5기 출신 친목회인 오성회(五星會)에서 봉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신용하⋮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