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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한

金鳳漢

미상 ~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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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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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천마산대
  • · 광복군총영 천마별영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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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태어난 곳과 연도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명으로 김봉한(金奉翰), 김봉환(金鳳煥)이 있다. 1920년 3월경 최시흥(崔時興)·최지풍(崔志豊) 등이 중심인 천마산대(天摩山隊)에 입대하였다. 천마산대는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고령삭면(古寧朔面)의 천마산에 근거지를 둔 무장대였기 때문에 천마산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8월 7일 최시흥·김효준(金孝俊) 등과 함께 평안북도 창성군(昌城郡) 청산면(靑山面) 용암동(龍岩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전달하였다. 광복군총영은 1920년 7월 오동진(吳東振)을 총영장(總營長)으로 결성되어 콴뎬현(寬甸縣) 일대를 근거로 국내 진공 작전을 활발하게 추진한 단체였다. 1920년 10월 천마산대는 광복군총영에 정식으로 합류하여 12월 천마별영(天摩別營, 또는 鐵馬別營)으로 개편되었다. 1921년 2월 18일 강계군(江界郡) 화경면(化京面) 진평동(津坪洞)에 14명의 대원과 함께 출동하여 구장(區長) 최시범(崔時範)을 육혈포로 쏘아 죽게 하였다. 최시흥을 비롯한 15명의 대원은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 응동(膺洞) 용곡(龍谷)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강계경찰서가 3월 5일 이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였다. 3월 13일 7명의 경찰이 기습했을 때 3명의 대원과 함께 30여 분 동안 교전하다가 현장에서 전사하였다. 대원 중 11명은 이미 전날 초산군 도원면(桃源面) 방면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전투에서 광복군 신표(信標)와 최급경고문(最急警告文) 2통을 압수당하였다. 1922년에 사망하였다. 단 다른 기록에 의하면 1921년 3월 13일에 사망했다고 한다. 광복군총영은 1922년 3월 5일 추도식을 거행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기관지 『독립신문』 4월 15일자에 추도식 소식을 전하며 전사한 사람들 27명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김명준(金明俊)과 함께 ‘철마별영 영원(營員)’에 그의 이름을 기록해 두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신주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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