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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률

金奉律

1897. 6. 23 ~ 1949.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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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봉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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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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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해인사
  • · 신흥무관학교

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관련 사건

  • · 3
  • · 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6) 1897년 6월 23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가야면(伽倻面) 치인리(緇仁里)에서 김병문(金柄文)과 김하림(金何林)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호는 포월(抱月)·망태(望太)이다. 해인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해인사 지방학림을 거쳤다. 만 20세가 되던 1917년 해인사에서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고 승려가 되었다. 1919년 3월 서울 중앙학림(中央學林) 학생이었던 김봉신(金奉信)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송복만(宋福晩)·박근섭(朴根燮)·최범술(崔凡述)도 다른 학생들에게서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3·1운동의 소식을 공유하였다. 해인사 등사판과 학교 등사판을 사용하여 독립선언서 1만 장을 등사하였다. 자체적으로 조직한 학생대표 30명은 뒷산 숲속에서 비밀 회합을 진행, 독립운동 방안을 토의해 결정하였다. 지역별로 3인씩 나누어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도록 했는데, 강재호(姜在鎬)·기상섭(奇尙燮)과 함께 경상북도 경주, 경남 양산·동래·부산·김해 지역을 담당하여 통도사, 범어사 등의 사찰들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5월에 강재호·송복만·박덕윤(朴德潤)·김장윤(金章允)·이달준(李達俊) 등 10여 명과 함께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1920년 9월경 군자금 모집을 위해 박달준(朴達俊)·김장윤·우민수(禹敏秀)·김경환(金景煥) 등과 함께 국내로 잠입하였다. 경남 거창군(居昌郡) 가북면(加北面) 용암리(龍岩里)의 자택에서 서로군정서 관인의 영수증을 만들었다. 경상남북도의 각 사찰을 순회하며 독립 자금을 모금하기로 정하고 박달준·김경환·우민수에게 경북 일대 사찰을 맡기고 김장윤과 함께 범어사, 통도사 등 경남 일대 사찰을 순회하였다. 금룡사(金龍寺), 대승사(大乘寺), 고운사(孤雲寺), 범어사에서 각 30원씩을 여비 명의로 모금한 돈을 만주한족회의 사판장(司判長) 최명수(崔明洙)에게 송금하였다. 1921년 1월경 박덕윤·김장윤 등과 경상북도 문경(聞慶) 금룡사에 군자금 조달차 잠입하였다가, 금룡사 승려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중 50일 본형에 산입)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25년부터 1927년까지 교토 불교대학에 유학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1929년 장난이(張爛伊)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1931년 10월 14일부터 1936년 11월 25일까지 경북 선산군(善山郡) 수다사(水多寺) 주지, 1937년 7월 5일 이후 경북 김천군(金泉郡) 직지사(直指寺) 주지를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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