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문
金秉文1894. 6. 10 ~ 1967. 5.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흠치교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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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5) 1894년 6월 10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천전동(川前洞)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김국명(金國明)이다. 1920년 2월 경 권영헌(權寧憲)의 권유로 안동군 풍산면(豊山面) 노동(魯洞) 권영헌의 집에서 치성제를 지내고 흠치교에 가입하였다. 흠치교는 증산(甑山) 강일순(姜一淳)이 설립한 신흥종교였다. 다른 이름으로는 증산교, 태을교 등으로 불렀다. 1909년 강일순 사후 차경석(車京石)이 교주가 되어 교단을 이끌었다. 흠치교는 1919년 10월에 방주제(方主制)의 교단 조직을 제정하면서 교주 아래에 60인의 방주(方主)를 두고, 그 아래 각 방(方)에 대리(代理) 1명, 육임(六任) 6명을 두어 교첩 및 인장을 가지는 책임자로 삼았다. 1920년 4월 각 방의 육임 아래에 십이임(十二任)을 정하고 그 아래에 팔임(八任)을, 팔임 아래에 십오임(十五任)을 정하여 교단의 조직을 확대하였다. 권영헌의 권유는 흠치교의 교단 확대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치성비라는 명목으로 육임은 30원, 십이임은 15원, 팔임은 10원, 십오임은 5원을 각각 내게 하였다. 흠치교는 1924년 갑자년(甲子年)에 국외의 독립운동 기운이 일어나고 일본과 미국·중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한국이 독립할 것이라고 보았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교주 차경석이 계룡산에 도읍하여 제위에 즉위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 교단 조직 개편과 신자 모집, 자금 모금에 노력을 기울였다. 권영헌 휘하의 십이임에 들어가 본인 아래에 팔임을 조직하고, 그중 4명에게서 30원을 모금하였다. 30원 중 15원은 소비하고 나머지 돈은 권영헌에게 건넸다. 권영헌 등 육임에게서 흠치교가 돈을 모으는 것이 한국 독립이라는 큰 목적을 위한 사업이라는 설명을 듣고 수행한 것이었다. 흠치교 조직 확대 활동 및 모금 활동에 힘쓰던 중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1년 2월 8일에서 4월 18일 사이에 경찰범처벌규칙 위반과 범죄즉결례에 근거해 일선 경찰서에서 구류형을 당하였다. 같은 혐의로 기소되어 1921년 6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21년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전의 구류형으로 형이 이미 집행되었으므로 면소 판결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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