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혁
金斗爀1908. 3. 11 ~ 1995. 8. 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송산고등농사학원
- · 계우회
- · 동경평안그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평안그룹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8년 3월 11일에 태어났고, 본적지는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고평면(古平面) 송산리(松山里)이다. 중류의 농가에서 태어나 1923년 평양의 숭인학교에 입학하였다. 1928년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32년 졸업 후 송산리 소재 신망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다. 1935년 10월 경천(敬天)·애린(愛隣)·친토(親土)의 교육 방침을 추구하는 송산고등농사학원을 설립하고 원장으로 근무하였다. 송산고등농사학원은 보통학교 졸업 후 상급학교 진학이 힘든 무산아동(無産兒童)을 위한 중등교육기관이었다. 10여 명의 유지와 함께 설립 발기회를 조직하고 황경진(黃京鎭)으로부터 실습지 밭 3,000여 평을 기부받아 설립된 학교였다. 입학 정원 40명의 학생이 2년 동안 공민교육, 작물학, 비료학 농촌경제, 가공법 등실습 위주의 교육을 받으며 농도정신(農道情神)을 함양하였다. 조만식(曹晩植) 외 8명의 이사를 중심으로 운영되다 1936년부터 새로 설립된 재단이 운영 주체가 되었다. 1937년 도쿄농업대학에 입학하여 선과생(選科生)으로 유학하였다. 1937년 9·10월경 같은 학교 재학생 김태훈(金泰薰)·김운하(金雲夏)와 함께 평안도 출신 유학생을 중심으로 독립을 위해 농민의 민족의식 함양과 실력 양성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평안(平安) 그룹’을 조직하고 본거지는 송산고등농사학원으로 삼았다. 평안그룹은 한국의 독립과 민주공화국 건설, 공산주의 배격과 해방운동 전개, 농민계몽운동 및 교육 실천, 민족의식 함양, 동화정책 배격과 관직 취업 금지, 도쿄 각 대학의 유학생을 대상으로 조직 확대 강화 도모, 한국 내 동지 획득, 지도자로서의 인격 수양, 전쟁 등의 시기에 폭력 혁명을 통한 독립 쟁취 등을 강령으로 내걸었다. 이때 중앙지도부원이 되었다. 조직의 확대와 강화를 위해 김운하는 도쿄농업대학 한국인 유학생의 계우회(鷄友會), 김태훈은 도쿄 각 대학의 조선인 학우회(學友會)를 담당하기로 결의하였다. 1938년 3월 도쿄농업대학 졸업 후 바로 귀국하여 송산고등농사학원에 머무르며 국내 활동을 담당하였고, 방학 때 귀국한 동지들과 합숙하면서 민중 계몽 활동에 전력하였다. 1940년 2월 김운하·김태훈의 검거에 이어 7월에 검거된 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도쿄형사지방재판소로 송치되었다. 1942년 7월 28일 제1심 판결, 1943년 4월 27일 동경공소원 제6형사부의 제2심 판결을 근거로 5월 3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형이 확정되었다. 2년 9개월 간의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배영미⋮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