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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金東鎭

1867. 1. 8 ~ 195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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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동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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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榮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독립의군부
  • · 유림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3)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 · 유림단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3) 1867년 1월 8일 경상북도 영주군(榮州郡) 부석면(浮石面) 상석리(上石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김헌규(金獻奎), 어머니는 안동 권씨 권상곤(權相錕)이다. 본관은 선성(宣城), 자는 국경(國卿)이고 호는 정산(貞山) 또는 석포(石圃)이다. 서산 김흥락(金興洛)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909년 순흥군 향교 직원(直員)을 지냈다. 1913년 국권 회복을 위해 임병찬(林炳瓚)·허위(許蔿) 등 유림이 조직한 비밀결사 대한독립의군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독립의군부는 국권 반환을 촉구하는 투서를 전국으로 발송하고, 태극기를 게양하는 운동을 벌이는 한편,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벌였다. 1914년 4~5월 사이에 임병찬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영주경찰서에 체포되어 20여 일 동안 조사를 받았다. 1919년 4월 한말 대표적 유림인 김창숙(金昌淑)이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를 보내는 서명운동을 추진하자, 곽종석(郭鍾錫)·장석영(張錫英) 등과 함께 이에 참여하여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였다. 이 사실은 4월 12일 경북 성주군(星州郡)에서의 만세 시위 운동을 빌미로 발각되었고, 40여 일간 투옥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이를 제1차 유림단사건이라고 한다. 1925년 8월 김창숙이 주도한 제2차 파리장서운동 때 김창숙의 사촌동생인 김창백(金昌百)이 자금 모집원으로 활동해 달라고 제안하자, 동의하고 함께 활동하였다. 1926년 4월 2일 김화식(金華植) 등 관련자 600여 명과 같이 체포되어 대구감옥에서 1개월간 구금되고 옥고를 겪었다. 이를 제2차 유림단사건이라 한다. 저술로 12권 7책의 『정산집(貞山集)』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신주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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