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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선

金德善

1904. 7. 17 ~ 1945.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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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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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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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전라북도 고려공산청년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제4차조선공산당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4년 7월 17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 누문리(樓門里)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으로 김득선(金得善)이 있다. 광주공립농업학교를 3년간 수학하고 1921년 3월 졸업하였다. 농업학교 졸업 후 1920년 4월 창립된 담양청년회에서 활동하였다. 몇 년간 꾸준히 의연금을 모금하여 1923년 청년회관 낙성식이 거행되었다. 1924년부터 청년회관 내에 청년학원을 개설하여 무산아동 교육과 부인을 대상으로 한 야학을 운영하였다. 야학의 교사로 활동하다 1925년부터 1926년까지 일본에 유학하였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 후 1927년 4월 10일 담양청년회 정기총회에서 정경인·강종득과 함께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담양청년회는 정기총회 때 교양 문제에 관한 건, 노동 및 농민운동에 관한 건, 신간회에 관한 건, 회원정리에 관한 건, 담양유치원 기성의 건, 청년총동맹 분규에 관한 건, 형평운동에 관한 건, 여성운동에 관한 건 등을 논의하였다. 1927년 10월 결성된 담양야체이카에 가담하였다. 1928년 8월 전라북도 지역의 사상단체에 관련된 제4차 조선공산당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때 담양야체이카 책임자로 정경인·강종득·김용표와 함께 경찰에 체포되었다. 일제 측의 조사에 따르면 ‘농민운동에 몰두하여 친구의 권유를 받아 이에 공명하였으며,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가족은, 3명이며 자산은 2,000원, 생활은 보통이었다’고 한다. 1928년 9월 24일 서대문형무소에 구치되었다. 1930년 12월 9일 종결된 경성지방법원 예심에서 유죄 판결과 함께 2년 반을 구형받았다. 1930년 12월 22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 형이 선고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31년 8월 9일 출소하였다. 출소 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며 농업에 종사하다가 1945년 12월 27일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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