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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두

金洛斗

미상 ~ 1921.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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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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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서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옥석하 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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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정확한 출생 일시나 출생 지역은 밝혀져 있지 않다. 192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로군정서 의용대 제1중대 제3소대의 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서로군정서는 3월에 류허현(柳河縣) 싼위안푸(三源浦)에서 조직된 한족회에 뿌리가 있다. 한족회는 1919년 4월에 독립전쟁을 수행할 군정부(軍政府)를 조직하였다. 한족회는 11월에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합의한 ‘서간도 타협안’에 따라 1920년 3월 임시정부의 지휘를 받기로 결정하고 한족회가 보통행정을 담당하고, 군정부를 군정서(軍政署)로 개편하기로 결정하였다. 서로군정서의 군대는 참모부장 김동삼(金東三), 사령관 이청천(李靑天)을 중심으로 3개 중대의 의용대를 두었다. 1921년 12월 15일 의용대 제1중대 제3소대장 현기전(玄基甸)이 지휘하는 소대원들과 함께 지안현(輯安縣) 위스허(玉石河, 葦沙河) 즈거우(蚊子溝)로 출동하여 임시로 주둔하고 있었다. 때마침 퉁허현(通河縣) 치다오거우(七道溝)에서부터 지안현(吉安縣)까지 마적을 추격해오던 중국군 산림대(山林隊) 200여 명이 갑자기 의용의 임시 주둔처와 마을을 포위하고 진입하였다. 현기전은 10여 명의 비무장대원과 주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려고 ‘한국혁명군’이라 밝히며 산림대와 분쟁을 피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산림대가 의용대를 향해 총격을 가함으로써 현기전 소대장, 이봉섭(李奉涉), 김인홍(金仁弘)과 함께 현장에서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 소식을 보도하며 사건을 ‘옥석하참변(玉石河慘變)’이라 불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신주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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