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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영

金斗榮

1899. 12. 23 ~ 1978.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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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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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양(襄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양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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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9년 12월 23일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강현면(降峴面) 물유리(沕溜里)에서 태어났다. 성장 배경과 활동에 대해서는 자료의 한계로 알 수 없다. 1919년 4월 5일과 6일 양양군 도천면(道川面)과 강현면(降峴面) 주민들이 강현면 물유리에 있는 물치시장에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시위는 이석범(李錫範)이 동생 이국범(李國範), 아들 이능렬(李能烈)과 함께 계획하였다. 시위일은 물유리 장날인 4월 5일로 정하였다. 준비 과정에 참여하여 박제범(朴薺範)·김대선(金大先)과 함께 물유리에서 주민 동원과 시위 준비를 담당하였다. 4월 5일 강현면의 시위 군중은 물치장터에 모였고 도천면의 시위대는 대포경찰관주재소에 모였다. 이때 강현면에서 출발한 주민들과 함께 물치장터에 모여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이후 장터에서 거행된 독립선언식에 참여하였고, 주민들과 함께 대포리 경찰주재소로 행진하여 도천면민과 합세하였다. 대포경찰관주재소 앞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지속하다가 다음 날 양양면으로 가서 시위를 벌일 것을 약속하고 해산하였다. 4월 6일 도천면, 강현면 주민들과 함께 양양면으로 향하였다. 시위대 규모는 1,000여 명이 넘었다. 양양면 연창리(連昌里)에서 일본군과 조우하였고, 주민들과 함께 저지선을 뚫은 후 경찰서로 갔다. 이때 손양면(巽陽面)에서 300여 명의 시위대도 합세하였다. 경찰서장이 일본은 물러갈 터이니 만세만 부르고 돌아가 달라고 애원하여 결국 시위 군중은 저녁에 해산하였다. 4월 5일, 6일에 있었던 만세 시위 주모자들이 붙잡히는 과정에서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3일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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