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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춘근

姜春根

1891 ~ 1919.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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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춘근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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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濟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제주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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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관련 사건

  • · 법정사 항일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6) 1891년경 전라남도 제주도 오라동(吾羅洞)에서 태어났다. 평소 법정사 스님들과 교류가 활발하였으며, 법정사 스님들은 1914년경부터 법회를 통하여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일본의 국권침탈과 일본인 관리와 상인들의 부당함을 인식시켜 항일의식을 심어주었다. 1918년 4월경에 법정사 거주 승려들은 항일운동의 거사를 합의하였고 7월경부터는 법정사 불교도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과 함께 참여자를 이끌 조직을 지휘부와 행동부로 구성하였다. 그뿐 아니라 독립을 위해 일본인 관리와 상인을 제주도에서 쫓아내겠다는 요지의 격문과 몽둥이, 깃발 등을 사전 제작하고 화승총을 준비하였다. 법정사 항일운동의 조직은 총지휘자인 김연일을 중심으로 좌대장과 우대장의 지휘부와 거사 현장을 이끌 행동부로 구성하였다. 거사 현장은 선봉대장이 지휘하였다. 선봉대장 밑으로 거사 현장의 행동부에는 모사와 선봉집사, 선봉좌익장, 선봉우익장, 중군대장, 후군대장의 조직을 두어 거사를 이끌었다. 법정사 신도들이 선봉대로 지역 주민의 참여를 유도하면서 앞장섰고 중군대장과 후군대장이 대오의 중간과 말미에서 선봉대장을 도와 거사 참여주민 700여 명을 이끌었다. 1918년 10월 7일 법정사의 정례 예불일을 기회로 결집한 34명의 선봉대는 새벽 예불 후 총과 깃발, 몽둥이 등을 들고 법정사를 출발하였다. 격문을 통해 각 마을 구장들에게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본인을 제주도에서 축출하고 원래의 한국 시대로 회복하고자 함을 알렸다. 법정사를 출발하여 영남리·서호리·호근리·강정리·도순리·하원리를 거쳐 중문리까지 행진하였다. 전선과 전주를 절단하였고 일본인을 구타하여 상해를 입혔다. 중문경찰관주재소에 다다른 700여 명의 주민들은 경찰관주재소의 기구와 문서를 부수었고 주재소를 불태웠다. 서귀포경찰관주재소의 기마순사대가 총으로 무장하여 공격해 오면서 항일운동 참여자들이 흩어지고 체포되었다. 법정사 항일운동으로 하원리·월평리·도순리 등 법정사 인근 마을 주민과 법정사 승려 등 66명이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거사 현장에서 체포되지 않은 사람들은 계속된 추적으로 체포되어 네 차례에 걸쳐 구속이 행해졌다. 이들과 함께 체포된 후 1918년 10월 10일 형사사건으로 접수 처리되어 조사를 받았다. 제주지청 검사분국이 있었음에도 일제는 동급기관인 목포지청 검사분국으로 사건을 이송하여 조사를 실시하였다. 또한, 경찰의 수사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검찰 단계의 수사를 실시하였는데 이는 제주도에서 법정사 항일운동의 확산을 차단하고자 한 일제의 엄중한 의도를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918년 10월 21일부터 구류되었으며 1918년 11월 11일 기소되었다. 구속 수감되어 있던 중 1918년 1월 6일 사망하였다. 법정사 항일운동 참여자에 대한 재판 일인 1919년 2월 4일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일제의 구속 수사 중의 가혹행위를 짐작하게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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