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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金聲遠

1906. 1. 3 ~ 1998.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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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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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함흥(咸興)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함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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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수원고등농림학교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6년 1월 3일 함경남도 함흥군(咸興郡) 주북면(州北面) 운흥리(雲興里)에서 태어났다.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수원고등농림학교(이하 ‘수원고농’으로 줄임) 농과에 입학하였다. 1926년 4월 동아일보에 「조선에 난 희열」을 기고한 이래 「도(稻)」, 「농촌의 현실」 등 농사법이나 한국 농촌의 현실 등을 주제로 식민지 한국의 농촌 개발에 관한 글을 기고하였다. 1926년 여름방학 때 김찬도(金燦道)와 함께 조선인학생담화회(朝鮮人學生談話會)를 조직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김찬도를 지부장으로 하는 조선농민사 지부를 설치하였다. 학교 인근인 수원군 안룡면(安龍面) 고색리(古索里), 일형면(日荊面) 서둔리(西屯里)에 야학을 설립하여 농민층에 대한 교양 계몽에 주력하였다. 특히 수원군 고색리 예수교회에 설치한 고색리 야학에 교사로 참여하였다. 1927년 3월 수원고농 졸업 후 김해공립농업학교 교원으로 근무하였다. 김해공립농업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항일의식을 불어넣는 활동을 하였다. 1928년 5월 김해소년동맹이 주최한 어린이날 기념식에 참석하여 “장래 한국 대통령은 이 어린이 가운데 있다”라는 내용으로 축사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경찰의 주목을 끌어 추적받던 중 김찬도 및 우종휘와 주고받던 편지가 발각되었다. 졸업 후에도 수양단원들과 연락을 취하였으며, 1927년 6월 수양단이 건아단(健兒團)으로 개편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1928년 여름 건아단이 도쿄에 본부를 둔 조선농우연맹(朝鮮農友聯盟)의 지부로 가입하고 수원고농 후배 한전종(韓典鍾)이 조선농우연맹 조선강연단에 파견되었다가 고초를 겪은 사실도 편지 교환으로 알고 있었다. 1928년 8월 10일 금강산 여행 중 경찰에 체포되었고, 8월 14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부산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28년 9월 2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부산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감형되어 1929년 11월 28일 출감하였다. 출옥 후 고향으로 돌아가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1932년부터는 『동아일보』 등에 농사법 및 농촌 현실에 관한 글을 기고하였다. 1934년부터는 각종 농촌강습회에 강사로 참여하였다. 1934년 7~8월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 농촌부가 주재하여 평양 숭실전문학교 농과 안에 개설한 2개월 과정의 고등농사학원에 강사로 참여하였다. 고등농사학원은 농촌청년 중 농촌갱생운동에 뜻있는 사람에게 정말(丁抹, 덴마크)국민고등학교식으로 교수하여 한국 농촌의 중견 인물을 배양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조선장로회 농촌부 및 함남노회 농촌부가 합동으로 주최하여 함남 고원군(高原郡) 덕지예배당에서 열린 강습회에 강사로 참여하였다. 1935년 11월에는 함북 경성군(鏡城郡) 경성예배당에서 열린 조선기독교 농촌부 연례행사인 각도 순회농사강습회를 마친 후 경성군농회 후원으로 개최된 강습회에 배민수(裵敏洙)와 강사로 참여하였다. 1938년 함흥산업조합에서 『실험 조선과수재배법』을 출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조성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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