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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학

金世學

1919. 1. 2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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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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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일본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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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9년 1월 25일 서울 옥인동(玉仁洞)에서 출생하였다. 본적은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이다. 일제 말기에는 일본식 성명 강요로 개명된 금택풍만(金澤豊滿)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1935년 3월 가정환경 문제로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였다. 학업 중단 후 만주에서 목재 장사에 종사하였다. 학업을 계속할 목적으로 1937년 4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도쿄 센슈대학 예과에 입학하였다. 신문 배달과 구독자 모집 일을 하며 스스로 학비를 벌어 공부하였다. 1939년 9월부터 자신처럼 일본에서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김순창(金順昌)과 한관수(韓寬洙)를 만나 시국 문제 및 독립에 대해 논의하였다. 같은 해 12월에 신문구독을 권유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에게 모욕을 당하는 등 민족 차별을 경험하면서 독립운동에 나설 것을 결심하였다. 1939년 12월경부터 1940년 3월경까지 도쿄 『니치니치신문(東京日日新聞)』 다치아이가와출장소(立會川出張所) 등지에서 김순창·한관수와 여러 번 회합하며 독립운동 방향에 관해 논의하였다.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할 것인데, 일본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 일본에서 민중 봉기를 일으켜 국내외의 항일 세력과 호응한다면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연합군이 도쿄에 폭격을 가할 때를 기회로 삼으려 했다. 한인 학생이 집합 장소에서 연락과 지도를 담당하고 20~30명씩 무리지어 시내의 교통 기관과 방공 설비 등을 파괴하기로 했다. 철도역 광장 등 집합 장소를 미리 결정하거나 암호를 정하기로 했다. 무기를 입수하기는 곤란하므로 몽둥이 등을 준비해 두었다가 무기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등 구체적으로 무력 항쟁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를 위해 동지를 모아 굳건한 신뢰 관계를 쌓아야 함을 절감하고 도쿄의 한인을 가능한 많이 규합하여 이들의 독립 사상을 고취해 역량을 키울 방법도 논의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하던 중 1941년 9월 17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2년 5월 25일 도쿄형사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100일 산입)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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