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복
金順福1897. 2. 26 ~ 1958. 3.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2) 1897년 2월 26일 강원도 철원군(鐵原郡) 갈말면(葛末面) 문혜리(文惠里)에서 태어났다. 강원도 철원은 서울과 가깝고 이동이 편리하여 3·1운동 소식이 신속하게 전해졌다. 3월 1일 철원군 천도교 교훈(敎訓)이었던 최병훈(崔炳勳)은 평강군(平康郡) 평강면(平康面) 동변리(東邊里) 천도교 교구실에서 이태윤(李泰潤)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0매를 전달받아, 3월 2일 군내에 배포하였다. 또한 3월 3일 고종 장례식에 참가하려고 상경한 지역민의 상당수가 3·1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귀향하여, 독립 만세 운동의 분위기도 일찍부터 형성되어 있었다. 3월 11일 철원 읍내에서 한 사람이 보성전문학교 학생인 김칠룡(金七龍)의 집에 방문하여 ‘철원 읍내는 만세를 불렀으니 이 마을에서도 만세를 불러야 하지 않느냐’라며 권유하였다. 이어 문혜리(文惠里) 서당 훈장인 신성규(申聖奎)가 김칠룡에게 만세 시위를 제안하자, 함께 갈말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각 마을의 가정에서 각각 1사람씩 나오도록 권유하였다. 이때 문혜리에 사는 김학길(金學吉)·전사진(全士進)·김경삼(金敬三)·김상보(金相保) 등이 시위 준비에 참여하였다. 또한 내대리(內垈里)의 임낙호(任洛鎬), 동막리(東幕里)의 윤호병(尹浩炳), 토성리의 황철성(黃徹性)도 잇달아 가담하였다. 이들은 8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11일 오후 11시경 갈말면 지포리(芝浦里)에 위치한 갈말면사무소와 지포헌병주재소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때 임낙호 등 4명이 체포되었다. 3월 12일 오후 1시경 토성리·동막리·내대리·도창리(道昌里) 등에서 다시 모여든 약 800명의 시위대는 김화군(金化郡) 서면(西面) 청양리(淸陽里)에 위치한 청양리헌병주재소 앞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약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갈말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약 1,000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지포리에 도착해 면사무소 부근에서 독립 만세를 반복하여 외쳤다. 이때 면사무소 직원은 물론 면장까지 모두 도망간 상태였다. 전사진·김경삼·김학길 등과 함께 시위대를 지휘하였다. 한편 시간이 지나 어두워지자 숨어있던 면장 황희수(黃熙秀)가 나타나 시위대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계속해서 만세를 부르던 시위대는 면장의 권유와 헌병들의 저지로 오후 9시경 해산하였다.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笞刑) 90도(度)를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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