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병화

金炳化

1922. 4. 5 ~ 1967. 12. 2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병화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북 완주(完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완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922년 4월 5일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고산면(高山面) 읍내리(邑內里)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금주수의(金洲守誼)이다. 전주제이공립보통학교(全州第二公立普通學校)를 거쳐서 1937년 5월 전주제일공립보통학교(全州第一公立普通學校) 부설 야간 상과 과정에 입학하였고, 같은 해 9월 수료하였다. 1938년 봄부터 약 1년 반 동안 전주에서 행정대서 보조원과 점원으로 일하다가 전주지방 전매국에 입사하려고 하였으나,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취직하지 못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민족의식에 눈뜨게 되어, 『조광(朝光)』·『三千里』 등의 한글 잡지를 탐독하며 독립운동에 참여할 뜻을 품게 되었다. 1939년 10월 만주로 건너가 무단장성(牧丹江省) 닝안현(寧安縣) 영안가 성후구에서 일하는 친형 김병기(金炳琪)의 행정대서 사무를 보조하였다. 1940년 9월 잠시 고향에 돌아온 후 전주시 청수동 전주천 제방 위에서 전주제이공립보통학교 시절의 친구 송정섭(宋正燮, 郎山正燮)과 수차례 만나 일제에 항거하고 징병에 저항할 방안 등을 논의하였다. 이들은 일제가 한글 신문과 잡지를 폐간하여 한국의 문화와 혼을 없애려 하니 민족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한글 서적을 수집하고 읽어 일제에 항거할 것, 징병제도는 한국인을 희생시켜 전쟁을 수행하려는 것이니 이에 반대할 것,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 후방에서 불만이 많아질 것이니 이 기회를 이용하여 거사를 일으킬 것 등을 결의하였다. 이후 송정섭을 통해 조남헌(趙南憲, 和田有恒)·조세경(趙世庚, 富永晃) 등과 교류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기회가 올 때까지 실력을 양성할 것을 결의하고 회합을 가졌다. 1941년 6월 형이 북중국으로 이주하자 본적지로 돌아와 1942년 2월 전북 임실군(任實郡)의 남선수력전기회사(南鮮水力電氣會社) 임실역전 대기소에 사무원으로 취업하였다가 급여·지위 등 직장 내에서의 민족 차별에 분개하여 회사를 그만두었다. 같은 해 3월 서울 용산구 소재 연탄회사 환릉상행(丸菱商行)의 사무원으로 채용되어 근무하던 중 송정섭과의 활동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44년 6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45년 8월 광복되어 출옥한 이후 친형이 운영하는 논산석회광업주식회사(論山石灰鑛業株式會社)에서 근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원석⋮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