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령
金炳領1873. 2. 2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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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7) 1873년 2월 27일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대천면(大千面) 남정리(楠亭里)에서 태어났다. 3·1운동 당시 천도교인으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수안군의 만세 시위는 3월 1일 보성사(普成社) 사장인 이종일(李鍾一)로부터 황해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 시위를 전개하라는 지시를 받은 곡산의 천도교인 이경섭(李景燮)이 수안에 도착하며 시작되었다. 이경섭은 수안교구장 안봉하(安鳳河)와 김영만(金永萬), 홍석정(洪錫禎), 홍순걸(洪淳杰) 등 전 교구장, 전교사(傳敎師) 한청일(韓淸一) 등 수안지역 천도교 지도자들과 회합하고 독립선언서 100여 매를 전달하였다. 그리고 3월 1일을 기해 서울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이니, 수안지역에서도 독립선언서를 군내에 널리 배포하고 서울처럼 만세 시위를 전개하라는 이종일의 지시를 전달하였다. 이에 적극 호응하기로 결의한 안봉하, 홍석정, 김영만 등 수안의 천도교 지도부는 3월 2일 시일(侍日)을 맞아 수안교구 교구실에서 회합하고, 3월 3일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과 독립을 선언했으므로 헌병 분대를 인도(引渡) 받을 것, 그 실행 방법은 홍석정과 한청일이 담당할 것 등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거사 전 수안헌병분대에 계획이 탐지되었고, 그 날 오후 안봉하, 김영만 등 수안지역 천도교 지도부 11명이 교구실에서 체포되었다. 이 때 검거를 모면한 홍석정, 한청일, 이영철 등은 당일 밤 수안지역의 천도교 중심인물들과 연락을 통해, 계획대로 3일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임을 알렸다. 3월 3일 수안읍내에서는 오전 6시경과 11시경 각각 130~140여 명과 100여 명의 시위대가 참여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시위대는 독립 만세를 부르며 수안헌병분대로 행진하여 물러날 것을 요구하였다. 2차 시위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150여 명의 교인들은 오후 1시경 한청일과 홍석정의 지휘 아래 헌병 분대 앞에서 세 번째로 격렬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그도 시위에 참가하여 김희덕(金熙德) 등과 함께 헌병 분대로 돌진하여 문간에 설치된 장애물을 제거하고 헌병대의 퇴거를 강경하게 요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헌병대는 다시 군중을 향해 발포하였고, 시위를 주도하던 한청일과 홍석정 등이 사망하였다.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 특별형사부에서 내란죄로 관할재판소를 경성지방법원으로 지정하였고, 8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과 소요, 저택 침입죄로 공소 불수리 판결을 받았다. 이어서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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