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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학

金奉學

187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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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봉학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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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진위(振威)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진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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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1879년경 경기도 진위군(振威郡) 양천면(楊川面)에서 태어났다. 집안이나 성장 과정에서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1908년 손명선(孫明先)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충주 일대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군자금을 모으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의병 활동에 나섰던 시기는 1907년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이 강제 퇴위를 당하고, 연이어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해산되면서 일제에 대한 전국적 저항이 일어나던 때였다. 충주 일대는 한말 의병운동의 본거지라고 할 정도로 의병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곳으로 특히 1907년 이후 의병 활동에서 중요한 지역 중 하나였다. 손명선은 이러한 충청북도 충주군 등지에서 활약한 의병장 중 한 명이었다. 손명선은 소모장(召募將) 강영학(姜永學) 외에 인문식(印文熄)·이달성(李達成)·이성순(李聖順)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고 군자금을 확충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손명선 의병부대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의병 모집 및 군자금 확충의 활동을 담당하였다. 한편 이강년 의병부대가 충주를 공격하다 실패한 이후 이 일대에 대한 일본군의 경계가 강화되었다. 1908년 4월 20일 일본군 순사부장 외 2인의 순사는 한인의 복장으로 변복하고, 한국인 6명과 함께 충주에서 60리 떨어진 충주군 복성면(福城面) 일대의 수색에 나섰다. 이들은 민가 한 곳에 들어가 자신들이 의병이라 칭하며 다른 의병이 잠복하고 있는 집이 있을 것이니 이를 말하라고 하여 3~4곳의 집을 알아냈다. 21일 새벽에 일본 순사들은 그 집들을 포위한 뒤 집으로 돌입하여 잠복해 있던 의병들을 체포하였다. 이때 손명선(孫明先)·강영학(姜永學)·인문환(印文熄)·이달성(李達成)·이성순(李聖順) 등과 함께 붙잡혔다. 그 과정에서 가지고 있었던 군자금 10원과 기타 물품을 일본군에 빼앗겼다. 이후 1908년 8월 25일에 충주구재판소로 이송되어, 1908년 12월 5일에 강도 및 내란죄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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