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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

金相逸

1891 ~ 1920.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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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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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간도참변(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1년경 출생하였지만, 출생 지역은 알 수 없다. 이후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에서 항일운동을 하였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한 전후 시기 국외로 망명한 항일운동가들은 국외 한인 사회를 기반으로 하여 간도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힘을 기울였다. 조직된 독립군부대들은 1919년 8월부터 국내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이는 일제의 한반도 식민통치는 물론이고 나아가 그들의 대륙 침략정책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일제는 간도에서 활동하는 독립 운동단체를 탄압하려고 1920년 8월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수립하였다. 일제는 이 계획을 토대로 10월에 ‘훈춘사건(琿春事件)’을 조작하며 대규모 병력을 간도에 파견하여 독립군부대들과 전투를 벌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제는 간도 한인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되는 ‘경신참변(庚申慘變, 간도참변)’을 일으켰다. 일제는 2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간도에 침입하였다. 주력부대인 조선군 제19사단은 옌지(延吉)·룽징(龍井)·허룽(和龍)·훈춘(琿春) 일대를 ‘토벌구역’으로 설정하였다. 일본군은 이들 지역에서 1920년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항일 단체들과 항일 근거지로 지목되는 마을, 학교, 교회 등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전개하였다. 청산리대첩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간도 한인 사회에 보복성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1920년 10월 26일 간도 일본 총영사관에서 작성한 「배일부락(排日部落) 및 학교조사표」에 따르면 일본군은 허룽현 내에서 상광포(上廣浦)·어랑촌(漁郞村)·청산리(靑山里)를 비롯한 12개 마을과 명동학교(明東學校)·창동학교(彰東學校)·광동학교(光東學校) 등 19개 학교를 중심으로 학살을 자행하였다. 『독립신문』에 나타난 피해 상황을 살펴보면 허룽현에서만 피살 613명, 체포 3명 등의 인명 피해가 있었고 민가 361호, 학교 15개소 등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였다. 1920년 10월 19일 허룽현 사무사(四茂社) 송언동(松堰洞)에서 일본군에게 저항하다가 총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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