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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원

金相元

1890 ~ 1920.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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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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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학성학교(學成學校)
  • · 북로군정서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간도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90년경 출생하였지만, 출생 지역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후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에서 활동하였다. 이명으로 김한(金漢), 김상원(金尙元) 등을 사용하였다. 1916년 12월 말 허룽현 사무사(四茂社) 송언동(松堰洞)에서 학성학교 교사로 활동하였다. 당시 학성학교의 교장은 김덕현(金德玄)이었고, 학생 수는 68명이었다. 이 학교는 중광단(重光團)에서 간도에 거주하는 한인 자제들에게 민족교육을 실시하고자 여러 지역에 세운 교육기관의 하나로서, 허룽현에 건립된 것이다. 중광단은 나철(羅喆)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1909년 1월 서울에서 대종교를 창시한 이후 지린성 왕칭현(汪淸縣) 등을 중심으로 활동한 대종교 계통의 독립운동 단체이다. 대종교에서는 1910년 10월 허룽현 삼도구(三道溝)에 지사(支司)를 설치하여 포교 및 항일운동을 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1911년 3월 대종교에 입교한 서일(徐一)을 단장으로, 현천묵(玄天默)·백순(白純)·박찬익(朴賛翊)·계화(桂和) 등을 중심으로 중광단이 조직되었다. 이 단체에서는 학교 교육을 통해서 한인들의 민족의식을 높여 독립운동의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였다. 이후 1920년 2월 북로군정서 모연대 제3대장으로 활동하였다. 북로군정서는 3·1운동 이후 더욱 강력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려고 중광단이 주축이 되어, 공교회(孔敎會)·신민회(新民會) 및 북상한 의병 등을 규합하여 조직된 단체이다. 1920년 4월 허룽현 사무사 송언동 자택에서 북로군정서 모연대 제4대장 이홍래(李鴻來) 및 임영순(林泳淳)·김명호(金明浩) 등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할 계획을 세웠다. 5월 2일 밤 이들은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사민학회(四民學會)에 모여 무장한 후 무역상 김이옥(金爾玉)의 집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려 하였으나 김이옥이 도주하여 실패하였다. 이후 군참사(郡參事) 김명균의 집에서 그를 체포하여 사무사 잡래동(匝來洞)을 거쳐 증산곡(甑山谷)으로 연행하였다. 그 후 김명균의 종제(從弟) 김성균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서신을 받은 김성균은 5월 4일 그의 동생 김희균을 통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제공하였다. 1920년 10월 6일 북로군정서 대원 석기운(石基雲) 외 9명과 함께 무장하고 회령군 화풍면(花豊面) 인계동(仁溪洞) 진정국(陳定國)의 집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려 하였으나 일제 헌병이 출동하여 실패하였다. 일제는 간도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 단체를 탄압하려고 1920년 8월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間島地方不逞鮮人剿討計劃)」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을 토대로 10월에 일제는 ‘훈춘사건(琿春事件)’을 조작하며 대규모 병력을 간도에 파견하여 독립군부대와 전투를 벌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제는 간도 한인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되는 ‘경신참변(庚申慘變)’을 일으켰다. 일제는 2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간도에 침입하였다. 주력부대인 조선군 제19사단은 옌지(延吉)·룽징(龍井)·허룽(和龍)·훈춘(琿春) 일대를 ‘토벌구역’으로 설정하였다. 일본군은 이들 지역에서 1920년 10월 14일부터 11월 20일까지 항일 단체들과 항일 근거지로 지목되는 마을과 학교, 교회 등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전개하였다. 청산리대첩에서 패배한 일본군은 간도 한인 사회에 보복성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1920년 10월 26일 간도 일본 총영사관에서 작성한 「배일부락(排日部落) 및 학교조사표」에 따르면 일본군은 허룽현 내에서 상광포(上廣浦)·어랑촌(漁郞村)·청산리(靑山里)를 비롯한 12개 마을과 명동학교(明東學校)·창동학교(彰東學校)·광동학교(光東學校) 등 19개 학교를 중심으로 학살을 자행하였다. 『독립신문』에 나타난 피해 상황을 살펴보면 허룽현에서만 인명 피해는 피살 613명, 체포 3명이었고, 재산 피해는 민가 361호, 학교 15개소 등에 이르렀다. 1920년 10월 19일 허룽현 사무사 송언동에서 일본군에 저항하다가 총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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