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
金尙得190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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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901년 경상남도 밀양군(密陽郡) 밀양면(密陽面) 내일동(內一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상덕(金尙德)을 사용하였다. 밀양면 내일동 만세 시위는 서울에 상경하여 고종의 인산에 참여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온 윤세주(尹世冑)·윤치형(尹致衡) 등 지역 청년들에 의해 추진되었다. 윤세주로부터 만세 시위에 참여하기를 권유받고 이에 동참하여 준비 작업에 참여하였다. 이들은 3월 13일 밀양 읍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위북산(偉北山)으로 올라가 밤을 새워가며 독립선언서 수천 매를 등사하였고, 대형 깃발 1개와 소형 태극기를 수백 개를 만들어서 김병환(金鉼煥)의 집에 숨겨두었다. 3월 13일 거사 당일, 시위에 사용하려고 제작한 물건을 숨긴 채 밀양공립보통학교 앞 밀양 장터에 모인 1,000여 명의 군중 속으로 잠입하였다. 오후 1시 30분경, ‘조선독립만세’라고 크게 쓴 깃발을 세우고 윤세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18명의 동지와 함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모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또한 권문득(權文得)으로부터 ‘조선독립신문(朝鮮獨立新聞)’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나누어 주도록 부탁받아 이를 시위 군중에게 배부하였다. 그리고 설만진·이장수·정동준·박작지·엄청득·윤방우·최종관 등과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연호하며 행진하였다. 시위 군중은 김병환의 집에서 가지고 나온 대형 태극기 깃발을 선두로 앞세우고 나팔을 불며 소형 태극기를 흔들면서 시장을 행진하였다. 밀양 거리는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으로 뒤덮였고, 시위대 중 일부는 밀양공립보통학교로 들어가 독립 만세를 불렀다. 만세 시위는 비폭력적으로 진행되었지만, 그 기세가 드높아서 밀양에 주재하고 있던 일본 헌병과 경찰 병력만으로는 진압하지 못하였다. 부산의 일본 헌병수비대에서 병력이 지원되어 무력으로 진압하자, 결국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시위 후 체포되어, 1919년 4월 14일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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