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기
金相琦1894. 7. 28 ~ 1953. 9.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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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4년 7월 28일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현 양산시) 동면(東面) 사송리(沙松里)에서 태어났다. 경남 동래군 범어사(梵魚寺)에서 중등학교 과정으로 운영한 지방학림(地方學林)에 입학하였다. 1919년 지방학림 학생으로서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2월경 불교계 대표로 3·1운동을 준비하고 있던 한용운(韓龍雲)이 범어사를 방문해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던 준비 소식을 전하며 여기에 동참해줄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김법린(金法麟) 등 6명과 함께 범어사 대표로 상경해 3월 1일 서울의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독립선언서 등의 문건을 가지고 돌아와서 범어사 부속 지방학림과 명정학교(明正學校) 학생들을 규합해 동래군에서도 만세 시위를 전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3월 17일 범어사 승려 차상명(車相明)·김봉환(金奉煥)·안경환(安敬煥)·김영규(金永奎), 명정학교 학생 김한기(金漢琦) 등과 함께 명정학교에 모였다.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만세 운동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에 의견 일치를 보고 지방학림과 명정학교 학생들을 모아 읍내 시장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기로 결의하였다. 그날 밤 두 학교 졸업생들을 위한 연회를 열고 시위 참여를 권유하기로 했는데, 김한기와 함께 각각 명정학교와 지방학림의 유력자를 만나 이에 대한 승인을 얻고 학생들을 규합해나갔다. 그날 밤 열린 지방학림과 명정학교 졸업생 송별회에는 약 30~40명의 학생이 참석하였다. 식사가 끝난 후 김봉환 등 4명과 함께 연설자로 나서, 전국의 만세 시위 현황을 설명하고 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거사는 이튿날인 18일 동래시장 인근 불교포교당에 집결해 대기하고 있다가 장터에서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18일 새벽 김한기 등과 함께 불교포교당에 모여 시위를 준비하고 있는데, 사전에 정보를 탐지한 일제 경찰과 헌병들이 들이닥쳐 김한기·차상명·김영규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출옥한 후 범어사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매진하였고, 1940년 범어사 주지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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