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록
金三祿1882. 10. 13 ~ 1959. 3.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3
- · 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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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1882년 10월 13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삼계동(三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9일 창수면 창수동(蒼水洞)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창수면은 영해면(寧海面) 및 병곡면(柄谷面)과 더불어 경북에서 만세 시위가 가장 격렬했던 지역 중 한 곳이다. 창수면의 삼계동과 오촌동(梧村洞) 주민 10여 명은 3월 18일 오후 1시경에 시작된 영해면 성내동(城內洞) 장터에서의 만세 시위에 참가하려고 길을 나섰다. 그러나 신기동(新基洞)에 이르렀을 때 시간상 영해까지 가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판단되어 창수경찰관주재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고, 신기동의 마을 구장인 이현설(李鉉卨)과 협의한 후 주민들에게 만세 시위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다. 당시 신기동 주민들은 일제가 도로공사를 하면서 인근 전답을 강제로 수용했던 까닭에 여러 가지 불만을 품은 상태였기 때문에 크게 호응했다. 이튿날인 3월 19일 오후 4시경 주재소 앞에서 이수각(李壽珏)·권재형(權在亨)·이현우(李鉉祐)·이현설 등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연창하고, 그 기세를 몰아 군중을 지휘하여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사무실, 객사, 주임순사 숙사의 벽과 천정을 파괴하고 집기와 서류를 파손했으며, 계속해서 주임순사 다카기 이사부로高木伊三郞와 한국인 순사보 송상구(宋相九)·권찬규(權燦奎) 등이 오용이(吳龍伊)·이강복(李康福)·박석문(朴石文) 등의 집에 은닉해 두었던 각종 물품과 서적을 파손하였다. 시위대는 오후 7시경에 철수하였다. 영해에 파견된 일본군 부대가 창수동으로 하사 이하 6명을 급히 보냈으나 시위대가 이미 해산한 후에 도착하였다. 이후 대대적으로 실시된 일본 군경의 만세 시위 주도자 검거 과정에서 체포되었다.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 공무집행방해, 상해, 건조물 손괴, 기물 손괴, 공문서 훼기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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