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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모

姜聖模

1915. 11. 19 ~ 1940.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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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성모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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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扶餘)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부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부여공산주의자협의회
  • · 칠모회
  • · 부여농민조합연합회
  • · 대야구락부
  • · 홍산노동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5년 11월 19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장암면(場岩面) 장하리(長蝦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부여 지역에서 강일구(姜日求)·유기섭(柳基燮) 등과 함께 학생들의 궐기를 촉구하는 전단을 작성·배포하였다. 1931년 봄에는 이호철(李戶喆)·노명우(盧明愚) 등이 주도한 부여공산주의자협의회(일명 충남공산주의협의회)에 가담하였다. 혁명적농민조합 조직에 착수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야학·강습소를 설립하여 우선 민중 계몽에 주력하였다. 이 단체는 1933년부터 각 마을마다 야학 개설과 연극 공연 등으로 농민들에게 항일 의식을 고취하는 사업을 전개하였다. 이호철·오기영(吳祺泳)·최재봉(崔在鳳)·강병환(姜秉煥)·강병국(姜秉國)·강병순(姜秉順) 등과 토론회·좌담회 개최로 주민들에게 식민 지배에서 나타난 모순과 저항 의식을 일깨웠다. 이 과정에서 강병국·강석조(姜錫朝)·전영철(田泳哲)·강도형(姜道馨) 등과 함께 1933년 4월 중순 칠모회라는 비밀결사를 만들어 마을 단위로 활발한 야학을 설립하고, 한글·산술 등을 가르치며 문맹 퇴치에 노력하였다. 주민들과 소통·교류는 운동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활동 영역을 확대하는 계기였다. 9월경 무산청년데이에 즈음한 삐라 반입 혐의자 검거 과정에서 조직이 탄로 나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일제는 이를 구실로 야학 학생들과 가족까지 구금·심문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검거된 지 1년 9개월 만인 1935년 11월 20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고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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