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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택

金東澤

1899. 10. 2 ~ 1943.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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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동택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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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전협토건 오사카지부
  • · 천주일반노동조합
  • · 공명학원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3.1운동
  • ·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오사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99년 10월 2일에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 서부리(西部里, 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서 태어났고, 3·1운동 당시에는 도산면(陶山面) 의일동에 거주하였다. 본관은 선성(宣城)이다. 1919년 3월 17일 경북 안동군 예안면에 위치한 예안시장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예안면의 만세 시위는 고종의 인산일에 참가했던 김동택·이동봉(李東鳳)·이용호(李用鎬)·신응한(申應漢) 등이 서울의 시위를 직접 보고 돌아와 그 소식을 전하면서 본격적으로 계획이 추진되었다. 예안면의 1차 만세 시위는 이광호(李洸鎬)·이동봉 등이 군중을 이끌고 면사무소 뒤편 선성산에 올라가 일제가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記念碑)’를 쓰러뜨리면서 시작되었다. 이때 이동봉과 같이 시위대를 인솔하여 예안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갔다. 주동자를 비롯한 15명이 체포되고, 시위 군중이 해산 당하였다. 오후 6시 경 격분한 시위 군중이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재소로 몰려갔다. 이후 1,500여 명의 시위 군중은 주재소로 몰려가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3월 24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아 방면되었다. 3·1운동 이후 서울로 상경하여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여기에서 1932년 전협토건(全協土建) 오사카 지부에 가입·활동하는 한편 센슈일반노동조합(泉州一般勞動組合)의 본부 상임위원으로 활약했다. 또 공명학원(共鳴學院) 교사로 재직하면서, 서울에서 발간된 사상 잡지 『동방평론(東方評論)』, 『삼천리(三千里)』의 유통을 위해 조선현대사(朝鮮現代社) 우송부(郵送部) 오사카 지부를 운영하였다. 국내와의 정보 교류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식민 지배의 부당성을 비판하는 항일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활동이 발각되어 1936년 12월 14일 다시 체포되었다. 1938년 7월 19일 오사카 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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