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金東舜1918. 2. 18 ~ 2006. 2.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열혈회(熱血會)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8년 2월 18일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영유면(永柔面) 괴천리(槐泉里)에서 출생하였다. 농사를 짓고 동시에 잡화상을 운영하는 중류층 가정에서 자랐다. 기독교 신자이다. 평남 안주(安州)의 만성공립보통학교(萬城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였다. 1933년 4월 기독교계 사립학교인 평양 숭인상업학교(崇仁商業學校)에 입학하였다. 학교 설립자 조만식(曺晩植)과 여러 교사의 영향으로 학창시절부터 민족의식을 키웠다. 1938년 1월 박윤옥(釙潤玉)의 권유로 열혈회(熱血會)에 가입하였다. 열혈회는 1937년 2월 중순 숭인상업학교 재학생 5명이 결성한 비밀결사다. 농민을 대상으로 기독교 선교와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농업 기술 및 경영 지도를 통해 자력갱생을 도모해서 독립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이들은 자주 모여 활동 방안을 논의하고 동지를 모집하였다. 1938년 2월 초 최병무(崔秉武)의 집에서 회원 7명과 모여 각자의 활동 분야(종교, 작물, 문학, 경제, 축산, 농민문학, 과수, 교육)를 나눴는데, 이 중 교육 부문을 담당하였다. 회원 모두 상급학교에 진학해 분담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은 후 조국의 독립에 기여하기로 결심하고, 회원들이 일치단결하여 평양 부근 교통이 편리한 곳에 청년들을 모아서 농촌지도자로 양성할 농민도장(農民道場)을 개설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더불어 일본의 국력이 쇠퇴하거나 국외 독립운동 상황에 따라 때가 오면 일제히 봉기해 독립을 이루자고 맹세하였다. 비밀 연락을 위해 암호를 만들었다. 8명의 회원이 ‘어머니를 찾아가자’의 한 글자씩을 정했고, 이 중 ‘를’을 자신의 암호로 삼았다. 또한 매년 3월 1일과 경술국치일인 8월 29일을 열혈회의 기념일로 정하고 금식하며 독립을 위해 기도하였다. 1939년 3월에 숭인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곧이어 일본 도쿄(東京) 소재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예과(豫科)에 입학하였다. 유학 생활 중에도 열혈회 회원들과 만났다. 1939년 4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도쿄에서 박윤옥·김덕윤(金德潤)과 자주 모여 활동에 대해 논의하였다. 후일 농민도장 개설 자금을 함께 저축하기도 했다.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열혈회 회원 김현주(金顯周)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국내와 일본에 있던 열혈회 회원 모두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9년 11월 28일 도쿄에서 체포되었다. 1940년 8월 2일 도쿄형사지방재판소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1940년 10월 10일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41년 11월 27일에 예심이 종결되었다. 1942년 5월 16일 도쿄형사지방재판소에서 열린 1심 판결에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400일 본형산입)과 집행유예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수감 생활 중 동상에 걸리는 등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출옥 당시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해 비틀거리는 상태였다고 회고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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