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환
金斗煥1909. 7. 15 ~ 1956. 8.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전남운동협의회
- · 장흥적색농민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전남운동협의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9년 7월 15일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남면(南面) 덕암리(德岩里)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명은 김종태(金鍾泰)이다. 1933년 완도(莞島)와 해남(海南)을 중심으로 장흥·강진(康津)·영암(靈巖) 등지와 연계해 농민·어민·노동자·지식인을 포함한 사회주의운동의 통일적 지도기관으로 조직된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에 가입하였다. 조직 구성은 사무부(事務部)·조직부(組織部)·조사부(調査部)·구원부(救援部)를 두고, 기관지 『농민투쟁(農民鬪爭)』을 발간하며 활동하였다. 또한 ‘영농회사(營農會社)의 토지겸병 반대, 양반 기타 봉건사상과 지방열(地方熱) 배격, 소작료 감하 및 전정(全定) 요구, 면화·김海苔 등의 가격 인상 요구, 호세(戶稅) 인하 요구, 간상(奸商) 배격’ 등 실제 농민의 경제생활과 밀접히 관련된 슬로건을 내걸고 활동하였다. 1933년 8월 중순경 유재성(劉載星)·길인주(吉寅柱)·정진수(丁瑨壽)·고희석(高喜錫)·왕재일(王在一) 등 10여 명과 함께 수시로 모임을 개최하였다. 이들은 장흥 지방의 운동이 분산적으로 전개되어, 상호 연락이나 통제가 어렵다는 점을 반성하고, 그 지도기관을 결성하기로 협의하였다. 그러던 중 같은 해 10월 12일 경 강진군(康津郡)의 윤가현(尹珂鉉)·마성만(馬成萬)으로부터 ‘장흥적색농민조합(長興赤色農民組合)’을 결성할 것을 권유받았다. 그 해 10월 말경 덕암리 자택에서 길인주와 함께 유재성·정진수를 만나 장흥적색농민조합 결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하였다. 각 부락에서 2~5명을 단위로 반(班) 조직을 결성하기로 하고, 각자가 청년반(靑年班), 농민반(農民班), 소년반(少年班) 등을 결성하고 동지를 규합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렇게 비밀결사 장흥적색농민조합을 조직하기로 하여, 남면 내의 구(舊) 남하면(南下面) 지역을 담당해 세포반(細胞班)을 조직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12월 초순경 김진기(金珍琪)에게 장흥군 안양면(安良面) 지천리(芷川里)의 반 조직을 인수하도록 했다. 1934년 2월 전남운동협의회의 주요 간부가 일제 경찰에 붙잡히면서 조직이 와해되기 시작하였다. 전남운동협의회와 연계해 혁명적 농민조합운동 등의 관련자 558명이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에 연루되어 1934년 2월 중순경 일제 경찰에 체포된 후 오랫동안 취조와 고문을 받았다. 이후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검사가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다. 1937년 7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원심 미결구류 365일 본형 삽입)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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