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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

金東河

1922. 10. 5 ~ 1982.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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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동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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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용천(龍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조선방송협회(朝鮮放送協會)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단파방송청취사건(短波放送聽取事件)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1922년 10월 5일 평안북도 용천군(龍川郡) 양광면(楊光面) 용덕동(龍德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산(安山)이고, 창씨명은 금산규조(金山圭助)이다. 1939년 4월부터 일본 도쿄(東京)의 민간 무선통신사·민간 무선기술자 양성학교인 나카노고등무선전신학교(中野高等無線電信學校)에서 3년간 수학하였다. 1941년 귀국하여 조선방송협회(朝鮮放送協會) 기술부에 취직하였다. 1941년 8월경 서울 전농정(典農町, 현 동대문구 전농동) 하숙집에서 단파방송(短波放送) 수신기(受信機)를 조립하여 외국 방송을 청취하기 시작하였다. 1942년 7월에는 조선방송협회 개성방송소(開城放送所) 기술원으로 근무하면서 소장 이인덕(李仁德), 기수(技手) 성기석(成基錫)과 함께 전파수신기(全波受信機)를 이용하여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약칭 VOA)’와 중국 충칭(重慶)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우리말 중경방송 등을 청취하였다. 1942년 8월 29일 시작된 한국어 방송은 이승만(李承晩)의 ‘2천만 동포에 고한다’는 연설을 되풀이 방송하며 일본의 후방을 교란시키고, 한국인들에게 독립운동을 전개하도록 고무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일제는 방송전파 관제를 실시하여 정보의 유입을 차단하였으나, 방송국 기술자로 비밀리에 청취한 연합군의 승전·임시정부와 구미외교위원회의 활동·광복군의 전과 등 정세 정보를 수집하였다. 수집한 미국 방송의 내용을 하숙집 주인에게 전하며 미국군이 한국으로 진격하니 한국인은 독립을 위해 한 목소리로 궐기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런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1942년 12월 개성방송소 직원 이인덕·성기석과 함께 체포되었다. 1943년 10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무선전신법(無線電信法) 및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부산형무소·진주형무지소로 이감된 후 1944년 9월 3일 가출옥 석방되었다. 광복 이후 1945년 11월 연희방송소(延禧放送所)로 복직하여 근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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