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동준

金東俊

미상 ~ 193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동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지역 정보 확인 중국내항일

관련 단체

  • · 성진농민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성진(적색)농민조합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생년월일과 출생지는 미상이다. 함경북도 성진군(城津郡)에 거주 중 1931년 5월경 김도흠(金道欽)·이규종(李圭宗) 등의 주도로 결성한 성진농민조합에 가입하였다. 성진농민조합은 성진읍 욱정(旭町)의 중앙예수교 예배당에 본부를 두었으며 소작료 인하, 채권문서 탈취 및 소각 투쟁, 스파이 징벌 투쟁, 야학 철폐 반대 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또한 성진농민조합은 1932년 1월 산하에 농민조합본부임시통제위원회(農民組合本部臨時統制委員會)와 지도위원회(指導委員會) 등의 기구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하부 조직으로 7개의 면에 지부 14개와 45개 반(班)이 있었고, 2,000여 명의 조합원을 규합하여 항일 대중 투쟁을 전개하였다. 성진농민조합의 조직이 확대되자 일제 경찰은 1931년 9월부터 대규모 탄압을 개시하여 무려 조합원 700여 명을 검거하였다. 조합원으로 활동하던 중 1932년 10월 ‘성진농민조합 사건’으로 검거되었다. 9개월간 성진경찰서에서 취조받고, 1933년 8월 청진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어 같은 해 12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청진지방법원 예심에 회부되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동지들은 1934년 12월 청진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었으나, 예심 과정 중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원석⋮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