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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응

金東應

미상 ~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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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동응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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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성진(城津)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성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신간회 성진지회
  • · 성진청년동맹
  • · 성진농민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성진농민조합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함경북도 성진군(城津郡) 출신이다. 한편 1892년 경 태어났다는 의견도 있다. 1920년도 후반부터 성진 지역의 청년운동, 신간회운동, 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 1927년 9월 설립된 신간회(新幹會) 성진지회(城津支會)와 성진청년동맹(城津靑年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신간회 성진지부와 성진청년동맹의 조직원을 기반으로 1931년 5월 새롭게 성진농민조합(城津農民組合)을 결성하였다. 성진읍 욱정(旭町)에 있는 중앙예수교예배당에 본부를 두었던 성진농민조합은 소작료 인하 투쟁, 채권문서 탈취 및 소각 투쟁, 스파이 징벌 투쟁, 야학 철폐 반대 투쟁 등을 전개하였다. 또한 이 조합은 1932년 1월 산하에 농민조합본부임시통제위원회(農民組合本部臨時統制委員會)와 지도위원회(指導委員會) 등의 기구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하부조직으로 7개 면에 14개의 지부와 45개 반(班)이 설치되었다. 2,000여 명의 조합원을 규합하여 항일 대중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성진 지역에서는 6~7세의 어린아이들조차 혁명가를 부르고 다닐 정도로 농민조합의 대중적 기반은 두터웠다고 한다. 성진농민조합의 조직 활동과 대중 투쟁이 강화되자, 1931년 9월 이래 성진경찰서에서는 무장 경찰을 동원하여 대규모 탄압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1932년 무렵 체포된 것으로 보이며, 그해 9월 25일 이규송(李奎宋) 등과 함께 기소되었다. 당시 이른바 ‘성진농민조합 사건’으로 최종적으로 검거된 인원은 총 334명이었고, 기소된 인원은 137명이었다. 성진농민조합의 중심인물로 지목되어 일제 경찰과 검찰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청진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1934년경 기소 전 미결 상태에서 김동춘(金東春)·김일현(金一鉉)과 함께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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