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돈희
金敦熙1867 ~ 1922. 8. 3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독립후원의용단
- · 서로군정서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관련 사건
- · 조선독립후원의용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1) 1867년경 경상남도 의령군(宜寧郡) 풍덕면(豊德面, 현 의령면) 하리(下里)에서 태어났다. 한편 1868년 1월 9일에 출생하였다는 자료도 있다. 1914년 10월 의생면허(醫生免許)를 취득하여 1918년 1월까지 의원을 경영하였다. 대동단(大同團)에서 활동했던 김찬규(金燦奎)가 조직한 조선독립후원의용단(朝鮮獨立後援義勇團)에 가입하여 경남 재무국장(財務局長)으로 활동하였다. 조선독립후원의용단은 1920년 10월경 김찬규가 신태식(申泰植)·이응수(李應洙) 등과 함께 남만주 군정서(軍政署)를 지원하고자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할 목적으로 결성한 단체이다. 1921년 6월부터 경상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지방의 신망 있는 인사들을 설득하여 동지로 규합하였다. 이들은 김동진(金東鎭)을 통해 자금 모집 과정에서 필요한 권총 및 탄환과 군정서 총재(總裁, 이계원(李啓元), 본명 李相龍)이 발급한 군자금 모집 위임장, 군정서 군무총장(軍務總長) 노백린(盧伯麟)이 발급한 자금 모집 사령서(辭令書) 및 사형선고서(死刑宣告書), 상해 임시정부 명의의 독립 선전에 관한 경고문 등을 전달받았다. 그리고 1921년 10월부터 11월까지 경상북도 영일(迎日)·영천(永川)·군위(軍威), 경남 창녕(昌寧) 등지의 한국인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요구하는 서신을 우편으로 발송하였다. 그러나 친일 자산가들이 응하지 않아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1922년 11월 28일 경북 대구부의 계림여관(鷄林旅館)에서 단원 이대기(李大基)가 체포되면서 조선독립후원의용단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로 인하여 이 단체의 관련자 28명이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강도, 공갈, 약품 및 약품영업 취체령 위반으로 검거되었고, 12월 18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그러나 사건이 발각되기 이전인 1922년 8월 30일 취조 과정에서의 심문을 견디지 못하고 이미 사망하였다. 그래서 공소권이 소멸되어, 1923년 1월 6일 공소 불가로 불기소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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