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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한

金福漢

1920. 12. 1 ~ 1979.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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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복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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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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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독립회복연구단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9) 1920년 12월 1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안동면(安東面) 율세동(栗世洞, 현 안동시 율세동) 출신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호는 우보(遇步)이며, 김영일(金瑛一)이라는 이명으로도 불렸다. 일제가 창시개명을 강요하자 금원영일(金原瑛一)로 고쳤다. 일본에 유학하여 1943년 대학 졸업 후, 도쿄(東京) 아사쿠사(浅草)에서 일본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한국인 상인을 도와주다가 이른바 치안방해죄로 구속되어 스가모형무소(巣鴨刑務所)에서 5개월 동안 옥고를 겪고 안동으로 귀향하였다. 이후 안동 지역 비밀결사 단체 조선독립회복연구단(朝鮮獨立回復硏究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은 안동공립농림학교(安東公立農林學校, 현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1943년 10월 결성한 비밀결사단체였다. 무장투쟁을 활동 기조로 삼았으며 조직은 참모부, 연락부, 교화부, 신풍부, 특공부로 구성하였다. 이들은 비밀 유지를 위해 점조직을 유지하였는데, 본격적으로 활동하려고 조직 확장을 꾀하면서 안동공립농림학교(이하 농림학교) 학생 외 믿을만한 사람들을 포섭해 나갔다. 이에 일본에 있을 당시의 항일운동 행적으로 조선독립회복연구단에 지도부 자격으로 가입하여 활동을 펼쳤다.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은 국권 회복을 위해 국내외 정세 동향을 파악하고 적절한 시기에 일제의 공공기관을 파괴하여 후방을 교란, 연합군의 상륙을 도울 것을 결의하였다. 무력 항쟁에 대비하여 실제 격투 훈련, 통신 절단 훈련과 같은 특공 훈련을 실시하였는데, 단원들에게 권투를 가르치고 체력을 단련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1945년 3월 10일 일본 육군 기념일 행사가 진행되는 틈을 타 농림학교 무기고의 총을 탈취한 다음 헌병파견대와 안동경찰서를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이 거사에는 농림학교의 또 다른 비밀결사 단체인 명성회(明星會)도 동참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단원 일부가 다른 사건으로 안동경찰서의 조사를 받던 중, 조선독립회복연구단의 조직과 계획이 탄로 났다. 이때 일제의 대대적인 검거로 단원 63명과 함께 체포되어 옥고를 겪다가 광복으로 1945년 8월 16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기소유예를 선고받아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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