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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조

金永祚

1906. 2. 29 ~ 1953.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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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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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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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삼신교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906년 2월 29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초계면(草溪面) 원당리(元堂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월항면(月恒面) 대산동(大山洞)으로 이주하여 활동 당시에는 대산동에 거주하였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할 때 삼본길남(三本吉男)으로 바꾸었다. 1935년 초부터 삼신교(三神敎)를 믿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포교(布敎) 활동을 하였다. 삼신교는 천(天)·지(地)·인(人)의 삼신(三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파로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에 사는 연정원(延鄭元)이 포교한 것이다. 지속적으로 포교 활동을 하여 같은 동리에 사는 이종철(李鍾喆)에게 포교하였으며, 1943년 3월에는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伽泉面) 창천동(倉泉洞)에서 송영상곤(松永相坤) 등에게 삼신교의 종지(宗旨)를 설파하였다. 또 일제가 침략전쟁을 감행하였지만 태평양과 동남아 각지에서 패하고 있다는 전황을 전하고, 삼신교를 믿으면 민족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1943년 4월 초에는 성주군 월항면 대산동(大山洞) 감혜사(感惠寺)의 승려 등 3명에게 일제가 침략전쟁을 일으킨 이유와 일제가 태평양과 동남아지역 전투에서 패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에 일본 경찰에게 ‘유언비어’를 날조해 퍼뜨렸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1943년 10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1944년 1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과 「육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10월(미결구류일수 6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44년 6월 21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서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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