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榮坤
榮坤1925. 6. 11 ~ 1992. 4. 1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일본군 병력 열차전복 시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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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925년 6월 11일 전라북도 금산군 금산면(錦山面) 오인리(衙仁里)에서 태어났다. 1940년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에 소재하고 있던 3년제 상업학교인 성동상과학교(城東商科學校)에 입학하였다. 성동학교 재학 시절 『순애보(殉愛譜)』·『흙』 등의 소설을 탐독하면서 점차 민족의식을 깨닫게 되었다. 같은 고향 사람인 김태영(金泰碤)과 교류하면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김태영은 해군애국작업단원(海軍愛國作業團員)으로 남태평양의 오리마이제도(諸島)에 끌려가 혹사당했고, 병을 얻어 돌아왔다. 이로 인해 전시 동원체제의 모순과 식민지 현실에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는 중일전쟁 이후 전쟁의 장기화와 전황 악화로 군수물자와 인력 징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1944년 3~6월 경 부터 김태영·김수동(金水同) 등 동지들과 더불어 10여 차례 모임을 갖고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였다. 우선 동지들과 일제의 살인적인 식량 공출을 저지하는 일에 앞장서기로 마음먹었다. 공출을 저지하기 위해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과 식량 공출 담당직원을 처단하고 철도에 멍석을 깔아 일본군 병력수송열차를 전복시킬 계획을 세웠다. 이어 ‘독립운동가(獨立運動歌)’와 ‘조선청년들아 단결하자’라는 내용의 벽보를 곳곳에 붙여 민중의 항일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이와 함께 독립전쟁에 가담하기 위해 스스로 일본군에 입대한 후 전장에서 일본군에 타격을 가할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사전에 발각되었다. 1944년 7월 일본 경찰에 붙잡혔고 10개월간의 재판 과정을 거쳐 1945년 5월 23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을 받았다. 김천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일본의 패전으로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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