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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昌

永昌

1884. 2. 16 ~ 1943.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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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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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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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임동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4년 2월 16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북면(臨北面) 계곡동(桂谷洞, 현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光山), 이명은 김영창(金永唱), 자는 성연(成淵)이다. 1919년 3월 21일 임동면(臨東面) 중평동(中坪洞) 편항장터(鞭巷)-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안동군 임동면 편항장터 만세운동은 유연성(柳淵成), 유동수(柳東洙), 이강욱(李康旭) 등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3월 15일 편항장터 동쪽에 있는 공동 타작장에 모여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동지를 규합하는 등 준비를 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오후 1시경 편항장터에서 기독교인 10여 명이 독립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오후 2시쯤 주도자들이 시장 가운데 나타나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이를 제지하던 우치다(內田) 순사가 주재소로 몸을 피하자 500여 명의 시위대도 주재소로 향하였다. 이때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로 들어가 무기를 빼앗아 우물에 버리고 서류들을 파기하고, 우치다 순사와 권택석(權泰奭) 순사보를 구타하고 주재소를 파괴하는데 가담하였다. 그리고 오후 5시 경에는 시위대가 면사무소로 몰려가 건물과 집기를 파괴하였는데, 이때도 면사무소로 들어가 건물과 집기를 파괴하는데 가담하였다. 안동경찰서로부터 급파된 순사부장 1명, 수비대 군인 8명이 도착하여 대대적인 검거에 나서면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31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요, 건조물 손괴, 가택 침입, 상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8월 18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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