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金榮守1881 ~ 미상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함경북도 성진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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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3) 출신지는 미상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81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함경북도 성진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 당시 함경북도 성진군(城津郡) 학성면(鶴城面, 이후 성진면) 욱정(旭町) 한정일(韓正一)의 집에서 거주하였다. 성진군의 만세운동은 함흥(咸興)의 사립영생학교(私立永生學校) 졸업생인 허용필(許容弼)이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준비되었다. 학성면 욱정교회(旭町敎會) 목사인 강학린(姜鶴麟)은 강희원(康禧元), 김상필(金相弼), 김원배(金元培), 배민수(裵敏洙), 서재영(徐在英), 안성윤(安聖允), 이효근(李孝根) 등 성진지역 기독교의 중심인물들과 제생병원(濟生病院)에 모여 성진의 만세시위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들은 3월 10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한 후, 3월 7일 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rierson, 한국명 (具禮善)) 목사를 방문하였다. 그리어슨 목사는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인쇄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1919년 3월 10일 10시 제동병원 앞 광장에 욱정교회 교인들을 중심으로 5,000여 명이 운집하였다. 강학린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참석자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오후 3시 반 경에는 사립보신학교(私立普信學校) 학생들과 기독교인 200여 명이 참여한 제2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경찰은 시위대를 무력으로 해산시키려 하였고, 시위대는 이에 맞서 경찰과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그 과정에서 경찰 5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에 경찰은 보병 제37여단 나남(羅南)부대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그 날 밤 기병 장교와 하사 등 14명이 성진으로 파견되었다. 이후 강학린, 안성윤 등 주도 인물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 날 만세시위는 함경북도에서 가장 먼저 전개된 시위로, 이후 성진군의 만세시위를 촉발시켰다. 뿐만 아니라 길주(吉州)와 명천(明川) 등 함경북도 전체로 만세시위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1919년 6월 28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보안법 위반,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 벌금 30원과 노역기간 30일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지만 7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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