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석
金永石1872. 4. 13 ~ 1951. 9.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경상북도 안동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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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1872년 4월 13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남후면(南後面) 수하리(水下里, 현 안동시 수하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에 벌어진 안동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안동면의 만세시위는 안동교회(安東敎會)에 다니는 기독교인들과 송기식(宋基植)이 주도하는 유림들에 의해 준비되었다. 안동교회는 본래 3월 13일 안동면 장날 만세시위를 준비하였으나, 3월 12일 일부 주도자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그러나 재차 논의하여 유림계와 함께 다음 장날인 3월 18일 만세시위를 거행하기로 준비하였다. 3월 18일 낮 12시경 삼산동(三山洞) 곡물가게 앞에서 기독교인 30여 명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대형 깃발을 앞세우고 남문통(南門通)과 북문통(北門通)을 오가며 행진을 벌였다. 유림들이 이끄는 시위대는 동문통(東門通)부터 행진하여 합류하였다. 안동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이승복(李承復)과 함께 안동면으로 건너와 오후 5시 무렵 기독교인 60여 명이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때 시위대와 함께 대한독립이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자정을 넘어서 시위군중은 무려 2,5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는 군청·경찰서·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으로 몰려가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돌을 던졌다. 경찰과 수비대가 총을 쏘며 시위대를 무력 해산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4월 7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항소하여, 5월 10일에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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