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서
金順西1896. 4. 19 ~ 19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1896년 4월 19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 외가천리(外加川里, 현 안성시 원곡면 외가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8일부터 31일까지 매일 원곡면 각 마을 주민들과 함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로 몰려가 연일 독립 만세를 외쳤다. 3월 28일 낮에 안성군 원곡면 내가천리에서 이덕순(李德順) 등이 우리 마을에서도 독립만세를 부르자고 제안하였고, 이에 찬동해서 사람들과 함께 외가천리에 위치한 원곡면사무실로 몰려가서 독립 만세를 불렀다. 인접한 칠곡리 주민 수십 명과 지문리 주민 수십 명도 원곡면사무소로 와서 만세를 부르다가 면장의 설득으로 해산하였다. 4월 1일 밤 8시경 사람들이 원곡면사무소 앞에 모여들자 여기에 참가하여 함께 만세를 불렀다. 그 후 원곡면을 출발해 시위 군중과 함께 양성면 동항리로 행진하였다. 이곳에서 만세 시위를 벌이던 양성면민과 합류하였고, 약 2,000명으로 불어난 시위대와 함께 이동하였다. 도중에 원곡면과 양성면을 경계로 하는 고개에 이르러 이유석(李裕奭) 등을 비롯한 주동자들이 대한 독립 만세에 대한 취지를 연설하자 이에 호응하였다. 또한 양성면과 원곡면 면내의 경찰 주재소·면사무소·우편소 등을 파괴하고 일본인 거주자를 축출하기로 한 결의에 따랐다. 4월 2일 새벽 다시 원곡면 외가천리로 돌아와 면사무소를 둘러싸고 시위를 벌였다. 김중식(金重植)·한재호(韓在鎬)·김필연(金必然)·김영희(金永熙) 등과 함께 면사무소로 들어가 불을 지르고 서류와 집기 등을 파괴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 곧이어 시위대와 함께 우편소로 달려가 돌을 던지고, 집기류를 앞마당에 끄집어내어 불태웠으며, 우편소 주변의 전봇대를 찍어 넘어뜨려 통신을 두절시키는 등 격렬하게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만세 시위의 여파로 한국 주둔 일본군 제20사단 보병 제40여단 제79연대 소속 장교 이하 25명이 파견되어 경찰과 함께 체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주민을 체포하였는데, 이때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경성지방법원에서 진행한 예심 결과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하여 1919년 8월 8일 고등법원으로 넘어갔다. 고등법원은 오랜 조사 끝에 1920년 3월 22일 내란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하고 경성지방법원을 관할재판소로 지정하였다. 경성지방법원이 항소를 수리하지 않아 결국 경성복심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어 1921년 1월 22일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소훼, 소요 등의 혐의로 징역 10년(미결구류일수 500일 본형 산입)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던 중 1922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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