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열
金世烈1875. 10. 3 ~ 1919. 4.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3.1운동
- · 제암리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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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75년 10월 3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팔탄면(鄕南面) 고주리(古州里, 현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충정대부를 역임한 김충식(金忠植)이다. 형 김흥렬(金興烈)은 3·1운동 당시 수원 지역 천도교 최고지도자였다. 천도교인으로 1919년 4월 15일 발생한 수원군 제암리(堤巖里) 및 고주리 학살사건 당시 일본군에게 피살되었다. 만세 운동 소식은 한적한 시골에도 전해져서 3월 말부터 고향 인근 지역에서 시위가 잇달았다. 먼저 3월 31일 향남면(鄕南面) 발안(發安)장터에서 만세 시위가 벌어졌다. 만세 운동은 천도교 지도자인 김흥렬과 김성열(金聖烈), 안종환(安鍾煥) 등이 주도하였다. 장터에 모인 약 1,000명의 사람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돌을 던지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총을 쏘아 시위대를 막고 해산시켰다. 이 과정에서 시위참가자 1명이 사망하였다. 이날 시위에 고주리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고주리는 발안장터와 매우 가까웠고 시위를 주도한 김흥렬과 김성열은 고주리 사람이었다. 이날 이후 발안 주변 지역에서 시위가 계속되었다. 4월 2일 밤에는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 불을 피우고 독립 만세를 불렀으며, 3일에는 장안면(長安面)에서 일어난 시위가 우정면(雨汀面)으로 확대되어 시위 참가자들이 경찰의 총에 맞아 부상을 입고 일제 경찰이 시위대에 의해 처단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격렬한 만세 운동이 계속되자 일제는 군대를 보내 시위 움직임을 억제하려고 하였다.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가 인솔한 일본군 제20사단 39여단 78연대 소속 군인들이 장안면과 우정면 일대로 가서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대규모로 검속하였다. 이 과정에서 마을 주민 3명이 사망하였다. 아리타의 부대는 4월 13일 발안으로 들어왔으며, 15일 발안장터에서 다시 만세 시위가 벌어지자 진압에 가담하였다. 아리타는 제암리에 거주한 적이 있던 한국인 순사보 조희창(趙熙彰)으로부터 발안장터 인근의 만세 시위는 제암리의 천도교도와 기독교도들이 벌인 것이라는 정보를 듣고서 부대원들을 이끌고 오후 4시경 제암리로 들어갔다. 순사 1명과 군인 2명을 마을 입구에 배치하여 퇴각로를 차단하고 순사보 조희창에게 마을을 돌면서 15세 이상 남자에게 할 말이 있으니 교회로 모이라고 한 뒤 사람들을 교회당에 가두고 불을 질렀다. 방화 후 곧바로 10분 거리에 있는 고주리로 이동하였다. 이때 마을에 있다가 형 김흥렬·김성열 및 아들 김주업(金周業)·김주남(金周男), 조카 김흥복(金興福) 등과 일본군에게 붙잡혀 포박당한 채 마을 뒷산으로 끌려갔다. 일본군은 수촌리 만세 시위 주도자였던 백낙열의 은신처를 물으며 협박하였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 자리에서 피살되었고 시신은 불태워졌다. 일본군이 물러가자 문중 사람 김시열 등이 재를 모아서 팔탄면 월문리 공동묘지에 묘를 조성해주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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