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의
金相義185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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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표창(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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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3) 1856년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용천면(龍川面) 신계리(新溪里)에서 태어났다. 흥원군의 만세 운동은 1919년 2월 28일 저녁 천도교 중앙총부의 『천도교회월보(天道敎會月報)』 과장인 이종일(李鍾一)로부터 강원도와 함경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 시위를 전개하라는 지시를 받은 안상덕(安商悳)이 평강교구와 영흥교구를 거쳐 3월 1일 홍원교구의 강인택(姜仁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강인택의 보고를 받은 홍원교구장 강남섭(姜南燮)은 3월 7일 홍원교구의 지도자들인 강인택·김세경(金世暻)·김한욱(金漢郁) 등과 회합하였다. 이들은 주익면(州翼面, 이후 홍원읍) 성동리(城東里)의 장날인 16일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13일에는 학천면(鶴泉面) 풍산리(豐山里) 소재 강연상(姜鍊翔)의 집에 모여, 독립선언서 1,000장을 등사하고 ‘조선 독립 깃발’을 제작하였다. 3월 16일 장날을 맞아 성동리 장터에는 수백 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다. 오전 11시 공성상회(共誠商會) 앞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강인택의 연설한 후, 깃발을 든 김기흥(金基興)을 선두로 700여 명의 군중이 홍원군청을 향해 행진하였다. 홍원군청 앞에서 더욱 큰 소리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은 붉은색 잉크를 뿌리며 해산을 종용하였다. 옷에 붉은색 잉크가 묻은 주동자들을 중심으로 60여 명이 현장에서 붙잡혔다. 3월 22일 오후 3시경 용천면 중평리(仲坪里)의 사자목 산등성이에 모인 400여 명의 군중은 김영희(金永禧)와 지상봉(池相鳳)의 주도로 용천면 서포리(西浦里)의 평포경찰관주재소(平浦警察官駐在所)로 나아갔다. 이때 시위대와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주재소 전방 50미터 지점에서 경찰과 충돌하여 경찰의 발포로 1명이 사망하고, 5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붙잡혀 1919년 7월 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7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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