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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

金炳朝

1895. 2. 5 ~ 1938.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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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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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대동(大同)중국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대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의용단 평양지단
  • · 한국독립당
  • · 한국독립당 톈진특구
  • · 동북의용군
  • · 중한연합군

포상 정보

  • · 독립장(1995)

관련 사건

  • · 3.1운동
  • · 평남제3부폭탄투척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95) 1895년 2월 5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병도(金炳道), 김영호(金永浩)·이준열(李峻烈)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평남 지방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1920년 1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의정원 황해도 의원인 김석황(金錫璜)이 독립 자금 모집과 의열 투쟁을 목적으로 의용단(義勇團)을 조직하였다. 김석황은 그해 4월 중순 국내에 들어와 평양 기홀병원(記笏病院)에 입원하여 단원 모집과 지단 건설에 노력하였다. 그해 6월에 의용단 평양지단이 조직되자 이에 가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 자금의 모집 방안으로 실시한 독립공채모집위원이 되었다. 이후 의용단원들이 각지에서 부호(富戶)들을 대상으로 임시정부를 지원할 독립자금을 모집하고 중화(中和)·성천(成川)·평원(平原)·사리원 등 평안도와 황해도 각지에 지단을 조직하였다. 그해 7월 한준관(韓俊觀)이 운영하는 포목상점에 평양 교통지국을 설치하여 연락장소로 정하고 회의를 열어 평남 제3부와 평양경찰서 그리고 평양부청을 폭파하기로 하였다. 평양지단에서는 미국의원단이 한국 방문에 때를 맞추어 국내 비밀결사를 중심으로 만세 시위, 일제의 관공서 폭파 등의 계획을 세웠다. 8월 3일 의용단원은 세 부대로 나뉘어 평남 제3부·평양경찰서·평양부청 청사에 각기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평남 제3부만 성공하여 유리창과 외벽이 파괴되고 일제 경찰 2명이 폭사하였다. 폭탄 투척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단원 김효록(金孝祿) 등과 함께 일제 경찰의 검거를 피한 단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여 숨겨주거나 혹은 도피시키고 음식물을 공급하는 등 편의를 제공하다가 8월 22일 대동군 임원면(林原面) 청호리(淸湖里)에서 체포되었다. 체포될 당시 권총 두 자루와 실탄 100발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1920년 12월 17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1년 6개월의 징역을 선고받고 불복하여 평양복심법원에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1921년 2월 22일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1922년 5월 14일 가출옥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나가사키(長崎)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5년 12월 체포되어 나가사키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다 1929년 3월 24일 출옥하였다. 출옥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1930년 1월 김구(金九)·안창호(安昌浩)·이유필(李裕弼) 등이 임시정부의 여당으로 한국독립당을 결성하자 가입하여 한국독립당 톈진(天津)특구 대표가 되었다. 1931년 9월 18일 일제가 류탸오후사건(柳條湖事件)을 조작하여 만주를 침략하자, 그해 11월 11일 중국인들은 상하이에서 일제의 만주 침략을 규탄하는 시민대회를 열고 동북의용군(東北義勇軍)을 편성하였다. 중국 각지에서 중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하는 동북의용군이 조직되자 참여하여 동북의용군 사령(司令)이 되었다. 1932년 10월 중순 김규식(金奎植)과 함께 상하이로 와서 동북의용군후원회에 동북의용군에 대한 경제 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리고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의열단, 조선혁명당, 한국광복동지회 등으로 분열된 독립운동 진영의 통합에 노력하였다. 일제의 첩보 자료에 “1932년 10월 중순 김영호(金永浩)라고 칭하는 이준연(李俊然)과 김규식이 상하이로 와서 그의 소속 단체 요동의용군(遼東義勇軍)의 대표”라고 하였다. 김영호는 김병조의 이명이고 또한 이준연 역시 이명인 이준열과 비슷하고 요동의용군은 동북의용군으로 파악되는 점에서 여기의 김영호는 김병조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 결과 11월 단체 중심의 연합체인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韓國對日戰線統一同盟)이 결성되었다. 이후 중한연합군(中韓聯合軍) 부사령(副司令)으로 중국인과 연대하여 항일 투쟁을 벌이다가 독립운동을 중단하고 석탄상(石炭商)을 경영하던 중 1938년 2월 상하이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상하이에서 헤이안마루(平安丸)를 타고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의해 인천항으로 호송되었고, 인천항에 도착하기 직전인 1938년 5월 24일, 서양 면도칼로 배를 가르며 자살을 시도하였다. 인천항에 도착 즉시 인천도립의원에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으나 5월 26일 오전 6시 40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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