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오
金順吾미상 ~ 1908. 9.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박동의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경상남도 함양군(咸陽郡) 마천면(馬川面) 창촌리(倉村里)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 연도와 성장과정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1908년 9월 15일 지리산 일대를 근거로 활동하던 박동의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격문을 전달하는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에 잡혀 사망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이어 1907년 헤이그특사사건으로 광무황제(고종)가 강제로 폐위당하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체결되었다. 연이어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면서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일본의 움직임이 본격화하였다. 당시 지리산 일대는 경상남도 지역에서 의병 운동을 선도하던 지역이다. 지리산의 험한 산세에 많은 의병이 의지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박동의(朴東義)는 이 지역에서 상당 기간 의병 운동을 전개했던 의병장이다. 일본 측의 문서에 의하면 경남 서부 지역 일대에는 윤영수(尹永壽)를 도원수로, 그 휘하에 박동의를 대장으로 하는 의병부대가 있었다. 박동의는 휘하에 6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면서 산청(山淸) 부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박동의 의병부대에 전군장(前軍將) 장궁만(張弓滿·張細敬), 중대장(中大將) 황내청(黃乃靑), 도선봉(都先鋒) 이학로(李學魯), 좌선봉 이만영(李萬永), 중군장(中軍將) 양문칠(梁文七) 영솔장(領率將) 김경삼(金敬三), 후군장 유명국 등이 포진해 있었다. 이들은 많게는 40여 명까지 인솔하면서 의병 활동을 펼쳤다. 박동의 의병부대 80여 명의 대원은 1908년 6월 11일 전라북도 운봉군(雲峰郡)에서 다테이시(立石)수비대를 습격한 바 있을 정도로 적극적인 대일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일본군 다테이시 수비대는 9월경 박동의 의병부대가 함양군 마천면 일대에 격문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마천면 창촌(倉村) 동장 김찬언(金贊彦)과 함께 의평촌(衣坪村) 동장에게서 격문을 받아 양전(陽田) 동장에게 전달하였는데, 이 사실이 일본 군경에 탐지되었다. 격문에는 ‘세금납부 거부, 탐관오리 징치(徵治), 일본 군경 위치의 의소(義所) 통보, 친일 세력 처단 협조와 의병 참여 호소’ 등의 내용이 실려 있었다.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박동의 의병부대의 격문을 각 마을에 알리던 중 일본군 수비대에 체포되어 1908년 9월 15일 일본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사망하기 얼마 전인 9월 13일 방장봉(方丈峯) 부근에서 박동의 의병부대가 일본군 함양수비대와 교전하였는데, 그의 죽음이 이와 무관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박동의 의병장 역시 1908년 10월 일본군에게 붙잡혀 압송되던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곽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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