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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광

金承光

1895. 1. 18 ~ 1958.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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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승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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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철산(鐵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철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5년 1월 18일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부서면(扶西面) 수유동(水踰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인근의 선천군(宣川郡) 선천면 천북동(川北洞)에 있는 신성학교(信聖學校)에 다니고 있었다. 선천군의 독립 만세 시위는 신성학교 학생들에 의하여 처음 일어났다. 신성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은 선천북교회(宣川北敎會) 목사인 양전백(梁甸伯)의 영향으로 만세 운동 계획을 알고 있었다. 교사 김지웅(金志雄)은 학생들과 함께 배포할 문건과 태극기를 등사기로 제작하는 등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3월 1일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오후 2시경 성경교사인 홍성익(洪成益)의 한국 독립에 관한 연설을 들은 후 교사 정상인(鄭尙仁)의 지휘에 따라 150여 명의 교우와 함께 교문 밖으로 나가 행진하였다. 학생들이 천남동(川南洞) 장터에 이르렀을 때는 시위 군중이 1,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교사 김지웅이 장터 가운데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본격적인 시가행진이 시작되자 태극기 1개를 손에 들고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선천군청과 선천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선천수비대가 기마경찰대와 함께 출동하여 발포하여 태극기를 들고 앞장서던 기수 강신혁(姜信赫)이 총에 맞아 절명하였다. 군인과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시위 군중은 흩어졌고 현장에서 2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이어진 검거 선풍으로 인하여 이날 만세 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1심 재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1919년 6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하여 ‘3월 1일은 조선독립선언의 날로서 독립을 절실히 원하기 때문에 만세를 부른 것이며 나를 벌하려면 나에게 폭력을 휘두른 일본 병사도 함께 벌해야 한다’라고 항변하며 상고하였다. 1919년 7월 12일 고등법원이 상고를 기각하여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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