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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록

金淳祿

189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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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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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강동(江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강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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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의용단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98년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 고천면(高泉面) 동서리(東西里)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 새해 벽두에 ‘신년은 독립전쟁의 해’로 시정 방침을 정한 뒤 군사 활동에 힘써 나갔다. 3·1운동으로 민족의식과 독립 의지가 고양되어 만주와 러시아령 연해주 지역에 독립군 단체가 속출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나들며 국내 진공작전을 결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시정부도 정세 변화에 맞춰 1920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삼아 군무부의 만주 이동을 논의하고,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의 독립군단과 연계하여 독립전쟁을 영도할 계획을 추진하였다. 국내에서의 군사 활동을 위해 임시정부 산하에 대한민국의용단(일명 의용단)과 군사주비단 등 군사조직을 만들었다. 이들 임시정부의 군사조직은 국내로 잠입하여 각지에서 조직된 비밀결사와 만주 독립군단의 국내지부와 연계하여 무장 활동을 전개해나갔다. 의용단의 결성 목적은 취지서에 잘 드러나 있다. 임시정부의 군사조직으로 선전포고가 발표되는 날 의로운 군사로 결전하여 순국할 것을 천명한 것이다. 아울러 장정을 통해 활동 방침도 명확히 제시하였다. “1. 포고문과 선전으로 국민을 고취하여 적개심을 격발케 하여 지구력을 갖게 할 것. 2. 정부의 기관을 보좌하여 재정 기타 사무를 원조할 것. 3. 국민에게 개병주의·개납주의를 고취할 것. 4. 권고 기타 방법으로 왜 총독부에 속한 관공리를 퇴직케 할 것. 5. 적의 관청에 납세를 거절하는 운동을 펼 것. 6. 일화 사용을 억제할 것. 7. 군무부에 연락을 취하여 가능한 방법으로 군사상 실제의 방편을 획책 또는 준비할 것. 8. 임시정부 공보 및 기관지의 전포를 보편화 할 것. 9. 본 단과 주의가 같은 다른 단체를 상호 협화 원조할 것. 10. 정부의 명령 또는 지휘가 있을 때와 기타 광복 운동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일에는 따라올 것.” 의용단 본부는 상하이에 두고 국내 각지에 지단과 분단 설치를 추진하였는데, 이 임무를 김석황이 주관하였다. 1920년 3월경 상하이에서 단둥(안동)과 펑톈(심양)을 거쳐 국내로 잠입한 김석황은 의용단 국내 지단과 분단을 결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각 도에는 지단, 군과 면에는 분단을 두는 방식으로 조직을 결성한 것이다. 우선 평안도와 황해도 각지에 지단과 분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상경하여 서울 숭인동에서 황중극을 만나 경기도 지단을 조직하였다. 의용단의 군사 활동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평안남도 청사 폭파와 경무부장 처단 의거였다. 1920년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은 군자금 모집을 위해 의용단원 김순일(金淳一)을 국내로 파견하였다. 국내에 도착한 김순일은 평남 강동군 출신의 김봉원(金鳳源)과 협의하여 군자금 모집을 위한 단원들을 모집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봉원의 권유를 받아 의용단에 입단하였다. 함께 가입한 인물로는 왕기서(王基西)·김봉섭(金鳳燮)·김태섭(金泰燮)·김국록(金國祿) 등이 있다. 이들은 군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 활동에 나섰다. 친일파와 밀정을 처단하는 것이 즉각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군자금을 모집하는 이유는 임시정부에 송부하기 위해서였다. 1920년 11월 김봉섭·김태린(金泰麟) 등 의용단원들과 함께 대동군(大同郡) 시족면(柴足面) 운곡리(雲谷里)에 거주하는 김규천(金奎天)과 박종덕(朴鍾德)의 집을 차례로 방문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각각 현금 45원과 40원을 제공받았다. 또한 강동군 고천면 동서리에 사는 김석영(金錫泳)의 집에 가서 그의 아들 김제준(金濟濬)에게 군자금 500원을 요구하여 140원을 갹출하게 되었다. 1921년 1월 28일에는 성천군 읍내에 사는 정현조(鄭炫祚)의 집에서 군자금을 요구하였으나, 밀정 김원봉(金元鳳)이 경찰서에 밀고하여 대대적인 수색으로 압박을 받게 되었다. 이에 1월 29일 단원 김태린·김봉섭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방해되는 친일파와 밀정을 처단할 것을 논의하였다. 그리하여 1월 30일 밀정 김원봉의 집을 기습하여 총살하고, 일본인 2명을 처단하는 등 군사 활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1921년 10월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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