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오
金聖吾1865. 11. 6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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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3) 1865년 11월 6일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순천면(順天面) 서변리(西邊里)에서 태어났다. 평안남도 중앙부에 있는 순천군의 독립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초순에 일어났다. 3월 1일 서울을 비롯한 일곱 군데에서 만세 시위가 있은 후 바로 다음 날인 3월 2일 은산면(殷山面)에서 은산면 천도교구실을 책임지고 있는 김기수(金基洙)가 주도하여 독립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천도교인과 주민을 포함하여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독립 만세를 부르고 해산하였다. 4일에는 자산면(慈山面)에서 자산면 천도교구실을 책임지고 있던 김선오(金善五)가 주도하였다. 천도교인의 주도로 주민이 합세하여 1,000여 명이 시위에 참여하여 독립 만세를 불렀다. 연이은 시위에 헌병대는 순천 천도교구장인 최단봉(崔丹鳳)과 순천교회의 김점환(金占煥)·유응진(劉應鎭)·표영각(表永珏) 등을 불러 시위를 엄단한다고 경고하였다. 하지만 순천면의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은 오히려 시위 준비를 서둘렀다. 3월 6일에 순천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으로서 순천면 야산당공원(野山唐公園)에 모인 2,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선언식에 참여하고 시위 행진을 벌였다. 시위대는 군대와 충돌하면서 해산당하였다. 이 자리에서 같은 교회에 다니는 김상호(金相浩)·김창환(金昌煥)·최봉환(崔鳳煥)·표영각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평양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1919년 6월 3일 평양복심법원이 항소를 기각하였다. 징역형이 확정되어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겪은 후 1920년 4월 26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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