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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룡

金瑞龍

1879. 8. 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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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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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북청(北靑)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북청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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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79년 8월 8일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 성대면(星岱面) 보성리(寶星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도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종교는 천도교이다. 1919년 3월 8일 북청군 노덕면(老德面) 내리(內里)에서 천도교인과 학생 등 250여 명의 주도로 북청군의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제 경찰의 제지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천도교 북청교구 교구장인 김태종(金泰鍾)은 북청교구 중심인물들과 함께 3월 11일 다시 만세 시위를 일으키기로 하였으나, 시위 준비를 눈치챈 일제 경찰에 김태종·이승국(李承國)·이덕수(李德洙) 등이 10일 밤 북청교구 교구당에서 예비 검속을 당하였다. 주도자들이 예비 검속되었음에도, 11일에 거행될 만세 시위 준비는 계속되었다. 3월 10일 성대면 조양리(朝陽里)에 사는 천도교인 김용원(金溶沅)의 집에서 북청군에서도 만세 시위를 전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듣고 적극적으로 찬동하였다. 이튿날인 3월 11일 만세 시위에 동참하기로 약속하고, 독립선언서 20여 매를 전달받았다. 독립선언서는 김용원이 3월 8일 이원군(利原郡) 서면(西面) 한당리(閑堂里)에 있는 정기옥(鄭基玉)의 집에서 천도교인 최병운(崔炳運)으로부터 받아온 100여 매 가운데 일부였다. 노덕면의 장날인 3월 11일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600여 명이 노덕면 내리에 있는 천도교 북청교구 교구당에 모였다. 이들은 전날인 10일에 김태종 등 천도교 북청교구의 지도부가 붙잡힌 사실과 일제 경찰이 외부와 차단하려고 읍성의 문을 닫은 것을 알고 당황하였다. 그러나 읍성 밖의 군중이 독립 만세를 외치자, 만세로 호응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독립 만세를 외치며 가지고 있던 독립선언서 20여 매를 거리의 주변 사람들에게 배포하였다. 그 과정에서 북청헌병분대 헌병이 50명을 검거할 때 함께 체포되었다. 이 일로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5월 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항소하였으나 6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도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상고하였지만, 7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1935년 2월 1일 천도교 북청종리원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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