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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정

金思鼎

1867. 9. 10 ~ 1942.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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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사정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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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원주(原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원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안승우 의병부대
  • · 호남의진
  • · 13도창의군

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6) 1867년 강원도 원주군(原州郡) 지정리(地正里) 안창(安昌)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字)는 공매(公梅), 호(號)는 벽하(碧河)이다.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金悌男)의 후손으로 대대로 원주 안창마을에 살던 양반 출신이며 소과에 합격하여 진사를 지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에 의해 살해된 ‘을미사변’이 발생하고 연이어서 단발령이 강제 시행되면서 전국에 반일 의식이 고조되었다. 결국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국수보복(國讐報復)’과 ‘근왕창의(勤王倡義)’의 기치 아래 친일내각 타도와 일본 세력 구축을 목표로 의병을 일으켰다. 1895년 11월 원주 안창에서 안승우(安承禹)·이춘영(李春永)·김백선(金伯善) 등이 의병을 일으키자 사위인 이춘영의 건의로 문중 대표로 참여하였다. 1896년 초 유인석(柳麟錫)이 자신을 따르던 유생들을 주축으로 의병을 일으킨 뒤, 이후 지평 출신의 포수 김백선(金伯先) 중심의 포군이 합류하면서 호좌 의병부대를 결성하였다. 이때 원주의 의병들과 함께 유인석의 호좌 의병부대에 합류하여 총독 소모장(總督) 召募將으로서 활약하였다. 이들은 제천 지역을 근거지로 의병 활동을 전개해갔는데 한때 충주성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충주성 전투 이후 원주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다시 제천의 본진에 합류하였다. 이후 관군이 제천을 포위하며 압박하는 한편 장기간 대치하는 과정에서 이후 투쟁 노선과 관련된 10개 항목을 유인석 의병장에게 건의하였다. 건의한 주요 내용은 ‘국모시해’보다 단발령을 내세우고 있던 기존의 명분을 비판하고, 팔도의 의병이 통일된 지휘체계를 구축하여 서울로 진격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전군장(前軍將) 안승우에게 의병부대 운용에 대해 조언하기도 하는 등 의병부대의 참모 역할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는 소모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896년 3월 별모장(別募將) 이필희(李弼熙)가 모집한 포수와 영동 지역의 의병들을 거두어 본진에 합류하였다. 4월 11일 황석촌(黃石村)에서 선봉장 손영국(孫永國), 좌군장 이희두(李熙斗)와 함께 적군과 접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관군의 공격으로 의병들이 해산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 은둔하였다.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과 함께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당하는 등 국권 상실이 현실화되자 다시 의병을 일으키면서 항일 의병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11월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大將) 이인영(李寅榮)이 전국에 격문을 띄워 각 도의 의병부대들을 경기도 양주에 집결하도록 하자 이에 호응하여 참여하였다. 양주에 집결한 의병들은 서울 진공 계획을 수립한 뒤 ‘13도창의대진소’를 결성하고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총대장 이인영이 부친의 부음으로 귀향하면서 13도창의군은 해산되었다. 이후 귀향해서도 집안의 재력을 바탕으로 의병들의 재정적 지원을 계속했으며, 일제 강점기에도 주요 항일단체들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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