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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

金炳鉉

1881. 12. 1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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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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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영흥(永興)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영흥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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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81년 함경남도 영흥군(永興郡) 선흥면(宣興面) 자산리(慈山里)에서 태어났다. 단 다른 기록에 의하면 1881년 12월 13일 태어났다고 한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도 거주하고 있었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영흥군의 만세 운동은 2월 28일 저녁 천도교 영흥교구에 서울에서 온 안상덕(安商悳)이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시작되었다. 안상덕은 2월 28일 10시경 천도교 중앙총부의 『천도교회월보(天道敎會月報)』 과장이자 보성사(普成社) 사장인 이종일(李鍾一)로부터 강원도와 함경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만세 운동을 전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2월 28일 독립선언서 2,000여 매를 지참하고 서울에서 출발하여, 그날 천도교 평강교구(平康敎區) 교구장인 이태윤(李泰潤)에게 독립선언서 700매를 전달하였고, 영흥교구에도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3월 1일에는 홍원군(洪原郡)으로 가서 전달하였다.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천도교 영흥교구장인 김용환(金龍煥)은 영흥 지역 천도교의 주요 인물인 조종오(趙鍾浯)·김면제(金冕濟)·이표(李杓) 등을 영흥교구 교구당으로 모이게 하였다. 이들은 논의를 통해 3월 5일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과 인접한 고원군(高原郡)과 정평군(定平郡)에 조종오와 이찬주(李讃周)를 각각 보내 독립선언서를 전달할 것을 결정하였다. 또한 3월 1일 새벽을 기해 집집마다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3월 5일 만세 시위는 원활하게 전개되지 못하였다. 1일 새벽에 배부된 독립선언서로 인해 일본 경찰의 경계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5일 천도교 영흥교구 차원의 만세 시위 주도는 없었다. 그날 저녁 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이상직(李相稷)의 주도로 시위를 전개하였지만, 곧 검거되고 해산되었다. 이날 시위 후 인흥면(仁興面)과 진평면(鎭坪面)에서 수백 명이 모여 만세 시위를 벌였다. 3월 10일에는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이 연합하여 영흥면의 면 소재지인 남산리(南山里)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남산리 장터에서는 16일과 17일에도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선흥면의 면 소재지인 성리(城里)에서는 장날인 3월 21일 오후 10시경 200여 명이 참여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때 같은 자산리에 거주하는 장문섭(張文燮)·한경복(韓景福)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들은 사전에 성리에 거주하는 박승룡(朴承龍)과 자산리에 거주하는 윤정길(尹鼎吉)과 만나 3월 21일 선흥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논의하였다. 장문섭·한경복 등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성리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주재소 앞에 모인 시위대를 주도하면서, 선흥면 증하리(曾下里) 출신으로 검속되어 주재소에 구금되어 있던 권영식(權寧植)·이용규(李龍奎)·이융일(李隆一) 등 4명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시위대의 요구에 일본 경찰이 응하지 않자, 한경복과 장문섭은 주재소 유리창을 깨뜨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상과 의자 등을 부수고, 주임 순사인 오가와(小川)에게 검속된 4명의 석방을 거듭 요구하였다. 이에 일본 경찰은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면서 이들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그 과정에서 장문섭·한경복과 함께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3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항소하여 5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요는 무죄판결을 받았으나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자신의 행위는 정의와 인도에 근거한 것으로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1919년 7월 2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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